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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r 15. 2021

내사진을 도용당한 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소희 님 사진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어요


페북에 올린 글에 다급한 댓글이 달렸다. 내 사진이 도용되고 있어 메신저로 열심히 알렸으나, 나는 그 메시지들을 볼 수 없었다. 페친 수가 어느 선을 넘어가자, 메신저에 하루가 멀다 하고 '이상한' 사진이나 메시지들이 날아들었다. 메신저 앱을 아예 삭제하고 페북 프로필에도 메신저 사양이라고 적었다. 다급하게 내게 전할 말이 있던 페친은 답답했을 것이다.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그렇게 차단하고 보지 않으면 그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눈을 가린다고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로만 듣던 인스타, 페북 사진 도용이 내게도 일어난 것이다. 누군가가 인스타와 페북에 며칠 전 올렸던 내 사진을 도용했다. 남녀 간 만남을 주선하는 일종의 중매 사이트 프로필에 내 사진을 올린 것이다. 


내 사진을 프로필에 도용한 계정


부들부들 떨렸다. 내 얼굴이 온갖 범죄에 이용되는 장면들이 마구 떠올랐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해당 사이트 담당자와 몇 번의 이메일이 오간 후, 사이트 담당자는 내 사진을 도용한 회원을 탈퇴 및 영구 이용정지 조치했다고 연락해 왔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런 후에야 지인이 캡처해서 보내준 프로필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사진을 도용한 인물은 50대 여자로 재혼 상대를 찾는다고 적혀 있었고, 가족관계며, 학력, 재산 정도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맨 먼저 드는 생각은 사진을 도용한 인간이 나머지 내용이라고 사실대로 썼을까 하는 의심이었다. 의심은 점점 불어나, 상대 남자를 유혹한 후 사기를 쳐서 금품을 가로채는 상상까지 이어졌다. 스스로의 상상에 취해 분개하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미안해졌다. 만약에 그녀가 프로필에 올린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녀는 남은 삶을 함께 할 동반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데 자신이 없거나 어떤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 전 인스타에 한 작가가 올린 글이 생각났다. 책을 홍보하기 위해 서평 이벤트를 했는데, 리뷰를 쓰자마자 무료로 보내준 책을 중고로 파는 걸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출간한 작가로서 함께 분개했고, 저자들이 살아가기 너무 어려운 환경이라고 댓글도 달았다. 그런데 며칠 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만 살기 힘든 세상은 아닌 것 같다고. 서평 쓰자마자 책을 중고책 판매 사이트에 팔아야 했던 누군가에게도 힘든 세상은 아닐지... 그 누군가는 서평을 쓰고 받은 책을 팔아 몇 천 원의 소소한 벌이를 '알바'처럼 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지...


진실은 알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서로가 짐작도 하지 못할 각자의 상황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저 함부로 판단하거나 재단하기 전에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조금은 덜 무섭고 조금은 따스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 다른 이야기:


요즘은 책을 내는 저자들에게 인스타 등을 하도록 출판사에서 권하고 있어요. 워낙 책이 잘 안 팔리는 시장에서, 그나마 팔로워 수가 많은 인스타 계정을 가지면 판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사실 인스타에 올리는 피드는 '글'이 아니고 '말'에 가깝기 때문에, 피드를 올리다 보면 문장이 망가져가는 걸 느껴요. 집중해서 글을 쓸 시간도 줄어들고요. 그런가 하면 독자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고, 책을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작가로서는 SNS를 얼마나 하는 게 좋은 걸까요? 늘 고민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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