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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r 16. 2021

이제 생일잔치는 끝났다

내가 사랑하던 생일을 떠나보내는 애도의 시간

뱃속에 씨앗으로 잉태된 건 늦은 봄날 밤, '부산 여관'에서였다.  


7년간 불 같은 연애를 하고, 목숨을 걸고* 허락을 얻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마침내 결혼한 엄마와 아빠. 부부는 신혼 초에 안타깝게도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빠는 전방의 군대에서 상관의 눈치 아래, 엄마는 시집에서 무서운 홀시어머니의 눈치 아래, 서로를 절절히 그리며 그렇게 신혼을 보냈을 것이다. 


할머니가 아빠를 면회한 날, 남겨 놓고 온 선물처럼 엄마는 그곳에 남아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서로를 아쉬워하는 뜨거운 밤이었을 것이다. 그 허름한 '부산 여관'에서 애끓는 밤을 보내고 돌아온 엄마는 온몸에 이가 옮아 한참을 고생했고, 그 후에는 뱃속의 '사림(思林)***' 때문에 입덧으로 더 한참을 고생했다. 입덧 때문에 물조차 맘대로 먹지 못하고 끝없이 토해내는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뱃속의 나는 필요한 양분을 쏙쏙 빼먹으며 잘 자랐다.  


2월 28일 예정일에 맞춰 일주일 휴가를 받아 나온 아빠는 목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휴가가 끝나도록 나는 뱃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부대로 복귀했고, 나는 그 뒤로도 한참을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도대체 첫 손주는 언제 나오냐며 내가 나올 문을 들여다보던 할머니는 갑자기 터진 양수를 머리에 홀딱 뒤집어썼다. 엄마에게 매운 시집살이를 시키던 할머니에게 선사한 근사한 선물이었다. 


그렇게 꼬박 16일을 더 버티다 그렇게,  

나는 태어났다. 

자기 자신을 자기도 모른다는 '물고기자리'를 벗어나려고 그렇게 버텼던 것인지 모르나, 

결국 '물고기자리’가 되었다. 


자기애가 강했기 때문이겠지만, 내가 태어난 날을 지극히 사랑했다. 모든 숫자 중 16이란 숫자를 가장 좋아하고, 안정적인 둘만의 관계보다는 팽팽한 삼각관계에 더 끌렸다. 토요일 오후에 가장 가슴이 설렜고,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물고기자리'의 특성에 늘 충실했다. 


봄이면서 아직 봄이 아닌 생일날, 꽃잎처럼 얇은 옷을 입고 나서면 늘 '꽃샘추위'란 녀석이 아프게 훑고 지나갔고, 생일이 지나면 감기에 걸려 앓아눕기 일쑤였다. 그래도 생일이 다가오면 늘 가슴이 출렁였고, 누군가 생일을 챙겨주지 않으면 오래도록 서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일이 같은 남자를 만나 '이건 운명이야’라고 믿으며 잘 달리고 있던 궤도를 이탈했다. 단 한 번의 궤도 이탈로 고장 나 버린 기차를 수리하고, 다시 궤도로 돌아오게 하는데만 한 시절을 보냈다.  


이제 생일잔치는 끝났다.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은 세상에 어찌 그리 많은지… 이제 생일은 1년 365일 중, 그저 그렇고 그런 하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 생일이 다가와도 설레지 않고, 3월의 꽃샘추위 아래 꽃잎처럼 살랑살랑거리는 스커트를 입고 매서운 바람 앞에 나서지도 않는다. 미역국을 싫어해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 먹기'라는 리추얼까지 무시하니, 생일은 그저 여느 날 중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뜨거운 불처럼, 끝없이 흔들리는 바람처럼, 내가 세상에 왔던 날을 여느 일상 중 하루로 무시하기엔 마음이 아프다. 언제부턴가 생일이 되면, 내가 사랑하던 생일을 떠나보내며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하나의 사랑을 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하듯,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떨기도 하면서… 



* 아빠가 자살 소동을 벌여 결혼 허락을 얻었다. 

** 외할머니는 엄마 아빠 결혼식 직전에 돌아가시고 만다. 

*** 엄마, 아빠는 처음부터 딸을 낳을 걸 알고 있었는지, 딸을 원했었는지, 앞으로 태어날 딸의 이름을 '사림'이라고 지었었다. 물론 실제 태어난 후에는, 그런 고요한 이름 대신, 밝고 뜨거운 이름을 붙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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