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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15. 2021

작고 귀여운 복어의 허세처럼

'중고딩'이주고받는 말을 엿들은 후

“이 년 진짜 싫지 않냐? 이 년은 정말 죽었으면 좋겠어.” 

언젠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교회 셔틀을 타고 나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들려오던 소리다. 뒤를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중고등학생 정도 되는 여자애들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 나쁜 년은 보니까 사정이 좀 있어. 나쁜 년이 된 이유가 있더라.” 

계속 이년, 저년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비난하는 대신 옹호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그제야 어깨의 긴장이 살짝 풀렸다. 


“You know what? I was in the shower, almost half naked…" 

그 보다 더 뒤에서 들려온 소리다. 이방 땅에 위치한 한인교회. 그 교회의 셔틀버스니 전화통화의 주인공 역시 최소한 한국어로 예배를 드릴 정도의 한국어 실력은 갖춘 한국인일 것이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게 분명한 그녀는, 아주 예의 없이, 벌거벗고 있었네, 그 남자애가 귀엽네 마네 하는 몹시 사적인 이야기를 큰 소리로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떠들어댔다. ‘나 영어 이렇게 잘한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우쭐함과 영어로 떠들면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서 오는 득의양양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마 모르긴 해도 (알아듣는 정도는 모두 달랐겠지만)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통화 내용을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필리핀으로 여행 갔을 때 바다 위에서 낚시를 한 적이 있다. 평생 처음 해보는 낚시. 과연 내가 물고기를 낚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내 낚싯대를 문 녀석이 있었다. 낚싯줄에 걸려 올라온 녀석은 작은 복어. 길이가 10센티는 될까 하는 작고 귀여운 복어가 잡혀 올라온 후 몸을 부풀리기 시작하는데, 금방이라도 그 작은 풍선이 터져버릴까 봐 눌러보지도 못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낚싯줄 처음 잡아보는 나한테도 걸리는 작고 어설픈 녀석이 내게 겁 주겠다고 배를 빵빵하게 부풀리던 그 모습. 버스에서 만난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에 귀여운 복어의 모습이 슬쩍 겹친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작은 복어의 배도 쏙 들어가 납작해졌듯이, 아이들의 허세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빠질 테지. 잔뜩 힘주고 부풀렸던 그 모습을 가끔은 그리워도 하도 가끔은 부끄러워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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