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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16. 2021

책 소개는 해도 책 추천은 하지 않는 이유

책과의 연애 vs. 북 큐레이팅을 통한중매결혼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알고 책을 골라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세상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길 바라는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 그래서 이것저것 묻곤 한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또 피하고 싶은지. 그럼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아무 거나 좋으니 추천해 달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면 긴장을 해야 한다. 그동안 읽었던 책 중 특히 좋아했던 책이 뭐였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제발 한 권이라도 답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때도 그냥 나를 믿으니 내가 읽고 좋았던 걸 추천해 달라고 하면 다리에 힘이 쫙 풀린다. 책 추천하는 일이 뭐 별거냐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다짜고짜 결혼할 상대를 골라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난감한 일이다. 자신이 읽었던 책 중 좋아했던 책 한두 권의 제목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추천해 주는 책을 끝까지 다 읽을 확률도 낮기에 추천하기 전부터 맥이 빠지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이나 읽고 난 후에 남는 교훈이나 감동도 중요하지만, 그 책을 만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듯, 책과도 인연이 없으면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책이 내 손에 들어오고 또 마침내 읽히게 될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설렌다. 많은 이들이 극찬을 했어도 끝까지 읽기 어려운 책도 있고, 수많은 책들 가운데 어떻게 이런 책을 찾아 읽을 수 있었을까 혀를 내두르게 되는 책도 있다. 그런가 하면 사놓고 몇 년을 묵히다가 어느 날 문득 단숨에 읽게 되는 책도 있고, 책이 숨바꼭질하듯 몸을 숨기다 맞춤한 때에 나타나 지금이 그때라고 손짓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제 각각이듯 책들과의 인연과 만남도 가지각색이다. 어쩌면 ‘책과의 만남’ 자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기쁨 일지 모른다. 기쁨의 가장 큰 원천을 남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다니, 마치 과일을 먹을 때 과육을 쏙 빼놓고 껍질과 씨만 먹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모든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쳐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의 소개로 연인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책과의 만남도 누군가의 소개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나 역시 설레는 첫 만남을 기대하며 남의 서재를 기웃거린다. 책에 관해 쓴 책들을 읽거나 북스타그램을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하지만 누군가가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책이라고 덥석 사보는 건 절대 아니다. 책이 내게 손짓을 하거나 말 걸어 주기를 기다린다. 수많은 책 중에 ‘필’이 오는 책은 꼭 있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추천’이라는 말보다 ‘소개’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책과의 ‘인연’을 믿기에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기보다는 이런 책도 있다고 소개하는 선에서 머물고 싶은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연애결혼이 중매결혼보다 우월하다거나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는 여전히 설레는 만남을 기대하며 책과 연애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꼭 맞는 책을 찾기 위해 전문적인 북 큐레이팅을 원할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책을 읽기만 한다면 열렬히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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