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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27. 2021

상처와 함께 친구를 마음에 들이는 아이

세계를 통째로받아들이는품

상처와 함께 친구를 마음에 들이는 아이와 혼자 숨어드는 아이

어느 날 동생이 저녁이 다 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두 발목과 다리가 시뻘게져 있었다. 골목에서 고무줄 뛰기 하는 아이들에게 붙잡혀 발목에 피가 맺히도록 고무줄을 걸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던 시절. 여자아이들은 주로 고무줄 뛰기를 했는데, 양쪽에서 두 아이가 발에 고무줄을 걸고 있으면 다른 아이가 노래에 맞춰 고무줄을 가로지르고 줄을 넘었다. 고무줄이 발에 닿지 않게 하거나 다리를 높이 거는 것을 겨루는 놀이였는데, 실력 있는 아이들은 물구나무를 서며 높은 고무줄을 뛰어넘기도 했다.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던 나는 가끔 창밖으로 골목을 내다볼 뿐 골목에서 아이들과 놀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누군가를 마음에 들일 때는 상처를 함께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어쩐지 일찍 알아버렸고, 그 때문에 문을 꼭 닫은 채 홀로 노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숫기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동생은 아이들과 골목에서 놀고 싶어 했다. 그렇게 마냥 바라보기만 하던 동생을 발견한 아이들이 동생의 발목에 고무줄을 걸어놓고 자기들끼리 신나게 뛰어놀았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그 골목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었다면 얼마나 정겹고 즐거운 풍경이었을까. 여자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에 맞춰 신나게 고무줄 뛰기를 하는 모습. 발목에 피가 맺힐 정도로 고무줄을 걸어주고 서 있지만, 한 번도 뛰어보지는 못하는 아이의 마음 같은 건 아마도 사진에서는 절대 엿볼 수 없었겠지. 함께 놀기보다는 약하고 어리숙한 아이를 놀이에 이용하는 아이들의 모진 마음 같은 것도 역시. 


“사진은 다 거짓말이야.” 


아이의 생일파티 사진. 누가 진심이고 누가 거짓일까?


열 명 가량의 아이들을 초대해 한바탕 생일파티를 치르며 찍은 사진을 보여 주자, 아이가 쓸쓸한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다. 아이에게 초대받은 아이들 중에는 아이를 무시하고 따돌리는 아이들도 있다는 말이 이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충격이 컸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선물을 건네며 한바탕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그런 서늘함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째서 그런 아이들을 파티에 초대한 거냐고 아이에게 묻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라면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생일 파티 같은 거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아이는 파티를 하는 도중에도 누가 자기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거짓으로 축하한다며 파티에서 제공하는 혜택만 누리려고 하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초대한 게 아니기에 파티 중에도 아파하고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그 상처를 감수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내가 아이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아이들을 돌아보자, 아이는 서둘러 말했다. 


“엄마, 아무 말도 하지 마.”  


그제야 아주 오래전 골목길 풍경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아픈 게 싫었다.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칼처럼 마음을 그어대는 그런 통증이 싫었다. 그래서 문밖으로는 아예 나가지 않았고, 다행인지 그럭저럭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동생은 왜 제대로 함께 어울려 놀지도 못하면서 고무줄을 발목에 걸고 피가 맺히도록 골목에 서 있었던 걸까. 그 아이들이 자기와 함께 노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챘을 텐데 왜 그 자리에 끼어 있고 싶어 했을까. 


여전히 어릴 적 동생의 마음도 지금 아이의 마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세계를 통째로 마음에 들이려는 그들의 품을 내 멋대로 가늠해 볼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금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한 건 그들이었을까, 아니면 나였을까. 그동안 그 답을 명확히 알고 있다고 확신했었는데, 그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넘어오지 말라고 금을 그어두고 그 속으로 숨어버린 건 나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 옛날 그 골목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문을 빼꼼 열고 골목으로 나가 봐야지. 그리고 고무줄 뛰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고무줄을 발목에 걸고 서 있는 동생에게 다가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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