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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21. 2021

빙판을 보면 긴장되는가, 설레는가?

실력과 관계없이 두려움이 있는 개는 이길 수 없다

스케이트나 스키를 배우지 못했다.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라면 다 싫어해서기도 하고, 무슨 이유인지 엄마가 동생들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쳤을 때 나만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미끄러운 빙판에서 얼음 지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데다 운동 신경도 둔하니 빙판이 나타나면 두려움에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몇 년 전 허리 디스크를 얻은 뒤로는 그 모든 것이 몇 배로 두려워졌다. 자칫 잘못 넘어져 또 몇 달을 누워있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추가되면서. 


빙판을 보면 겁부터 내는 나와는 반대로 큰 아이는 무조건 덤벼든다. 여덟 살쯤 되었을 때던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흠뻑 젖은 채 나타나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영하로 꽁꽁 언 날씨는 아니어도 아직 겨울이었기에 더욱 놀랐다. 젖은 옷을 벗기고 씻긴 후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쿨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를 걸어오던 중 단지 내 작은 연못이 얼어 빙판이 된 걸 발견한 것이다. 출렁거리던 물이 단단한 얼음이 된 것이 신기했던 것인지, 빙판만 보면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인지. 아이는 앞뒤 재지 않고 빙판 위로 올라섰고, 단단한 얼음이 아니라 겨우 살얼음만 얼었던 연못의 빙판은 가벼운 아이 무게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수심이 아이 허리도 안 되는 얕은 연못이기에 망정이지. 그때 놀란 가슴이 얼마나 세게 뛰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차가운 물에 빠진 경험은 아이에게도 분명 충격이었을 텐데, 아이는 그 후로도 얇은 빙판을 보면 겁 없이 뛰어올랐다. 그러다 빠진 적도 두어 번 더 있다. 빙판을 보면 넘어지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잔뜩 긴장한 채 부들부들 떠는 나와는 반대로, 아이는 얼음 위를 신나게 미끄러지는 한바탕 재미있는 놀이를 먼저 떠올리며 겁 없이 뛰어드는 것이다. 어쩜 저렇게 겁이 없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뛰어들 수 있지? 혀를 끌끌 차지만, 사실 아이의 모습은 그 나이 때 내 모습이기도 하다. 


이제는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변해 두려움이 많아졌지만, 내게도 아이처럼 겁 없고 두려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 그리고 실패가 지금의 겁쟁이를 만들었지만.  


한 번이라도 져 본 개는 투견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끔찍하게 물어뜯긴 경험이 개에게 두려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싸움 실력과 관계없이 두려움이 있는 개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가 빙판 위에 뛰어올랐다 빠지는 경험을 하고도 크게 괴롭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만약 빙판이 깨졌을 때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다 살아났다면, 아이는 아마 다시는 빙판 위로 함부로 뛰어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아이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떠올리며 쓸데없이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있지만, 아이는 어쩌면 설사 물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린데도 그 일로 두려움을 갖는 대신 그 일을 재미있는 추억으로 간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패 경험이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심어주는 건 아니니까. 아이가 나이를 먹어도 빙판을 보고 신나게 뛰어오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물론 두려움 많은 엄마는 지켜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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