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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어? 아이들이 죽었는데...

사랑에 관한 짧은 생각

by 윤소희

아이들과 성경을 매일 읽는데, 욥기를 읽다 말고 막내 아이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욥이 마지막에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어? 아이들이 죽었는데.”

순간 가슴 한쪽이 시큰했다.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네. OO이 대신 OO이보다 훨씬 더 키 크고 잘생기고 똑똑한 아들을 새로 주신다 해도, OO이가 없으면 엄마는 슬플 텐데. 욥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했잖아. 죽은 아이들이 훨씬 좋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걸 확신했을 거야.”

간단히 답해 주고 넘어갔지만, 아이도 나도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질문이 남았다.


욥기는 기복신앙, 신정론, 인과응보 등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아이의 질문은 주제에서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고 내게 숙제를 던져 준 듯했다. 양, 소, 낙타 등의 소유물을 갑절로 받아도 정말 갑절로 행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지만, 죽은 아이들보다 갑절로 아름다운 아이들은 어떨까.


얼마 전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에 보부아르의 어머니가 어느 젊은 수녀에게 보낸 편지가 인용되는데,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물론 저는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딸들을 두고서 혼자 가길 원치 않습니다.”


계약결혼과 자유연애 등 자신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딸의 삶을 보며 그 어머니는 딸이 천국에 가지 못할까 걱정했을 것이다. 천국을 누구보다 믿고 소망하지만, 사랑하는 딸들이 거기 없다면 그곳은 그녀에게 더 이상 천국일 수만은 없었으리라. 몇 년 전 비슷한 고백을 들은 적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함께 갈 수 없다면 천국에 가는 걸 포기하겠다고. 물론 오해다, 믿음이 부족하다 등 이들을 비난하는 이도 있겠으나, 나는 그저 이들의 사랑에 주목하고 싶다. 자신이 누리게 될 모든 복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그들의 사랑에.


아이는 욥기를 읽을 때 주인공인 욥 대신 죽은 아이에 감정이입을 했다. 자기 대신 더 아름다운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건지 묻고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답이 아니어도 좋으니, 아이에게는 다시 대답해 주고 싶다. 엄마가 욥이라면 다른 소유물을 하나도 돌려주지 않아도 좋고, 더 아름다운 아이들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OO 이를 돌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나 같은 아이도 사랑해요?’라고 자신 없이 묻는 아이와 나 역시 사랑하시는 분은 이런 마음마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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