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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26. 2021

욥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어? 아이들이 죽었는데...

사랑에 관한 짧은 생각

아이들과 성경을 매일 읽는데, 욥기를 읽다 말고 막내 아이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욥이 마지막에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어? 아이들이 죽었는데.” 

순간 가슴 한쪽이 시큰했다.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네. OO이 대신 OO이보다 훨씬 더 키 크고 잘생기고 똑똑한 아들을 새로 주신다 해도, OO이가 없으면 엄마는 슬플 텐데. 욥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했잖아. 죽은 아이들이 훨씬 좋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걸 확신했을 거야.” 

간단히 답해 주고 넘어갔지만, 아이도 나도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질문이 남았다. 


욥기는 기복신앙, 신정론, 인과응보 등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아이의 질문은 주제에서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고 내게 숙제를 던져 준 듯했다. 양, 소, 낙타 등의 소유물을 갑절로 받아도 정말 갑절로 행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지만, 죽은 아이들보다 갑절로 아름다운 아이들은 어떨까.  


얼마 전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에 보부아르의 어머니가 어느 젊은 수녀에게 보낸 편지가 인용되는데,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물론 저는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딸들을 두고서 혼자 가길 원치 않습니다.” 


계약결혼과 자유연애 등 자신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딸의 삶을 보며 그 어머니는 딸이 천국에 가지 못할까 걱정했을 것이다. 천국을 누구보다 믿고 소망하지만, 사랑하는 딸들이 거기 없다면 그곳은 그녀에게 더 이상 천국일 수만은 없었으리라. 몇 년 전 비슷한 고백을 들은 적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함께 갈 수 없다면 천국에 가는 걸 포기하겠다고. 물론 오해다, 믿음이 부족하다 등 이들을 비난하는 이도 있겠으나, 나는 그저 이들의 사랑에 주목하고 싶다. 자신이 누리게 될 모든 복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그들의 사랑에. 


아이는 욥기를 읽을 때 주인공인 욥 대신 죽은 아이에 감정이입을 했다. 자기 대신 더 아름다운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건지 묻고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답이 아니어도 좋으니, 아이에게는 다시 대답해 주고 싶다. 엄마가 욥이라면 다른 소유물을 하나도 돌려주지 않아도 좋고, 더 아름다운 아이들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OO 이를 돌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나 같은 아이도 사랑해요?’라고 자신 없이 묻는 아이와 나 역시 사랑하시는 분은 이런 마음마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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