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중 약자인 여자와 아이들이 여행을 다닐 때
하늘과 바다를 보면 눈부시게 아름답고, 사람들을 보면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하이커우 동역(海口东站)에서 싼야(三亚) 행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바글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으레 그렇듯 뭔가를 팔러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한 손에는 매직펜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스프레이를 든 채. 매직펜으로 자기 옷에 낙서를 하더니 스프레이로 그 낙서를 지운다. 그러다 갑자기 바짝 다가서더니 내 운동화에 매직을 들이대며 낙서를 하려 한다.
“부용(不用)”
나는 발을 치우며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남자는 돌아서기는커녕 점점 더 내 코앞으로 다가선다. 나는 점점 더 몸을 움츠리며 “부용” “부용” “부용”을 외쳤다. 남자는 한껏 조소를 띠며 내 눈앞에 스프레이를 들이댔다. 스프레이를 눈에 뿌릴까 두려워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옆에 앉아 있는 아이는 키가 나보다 커도 여전히 어린아이로만 보이고, 그 많은 사람 중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도 없던 나는 남자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표정을 지은 채. 절대 시선을 피하거나 눈을 깜빡거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눈을 부릅떴다. 몇 초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자의 눈빛과 표정이 변하는 걸 읽을 수 있었다. 만만하게 보고 희롱하려는 눈빛에서 '괜히 건드려 봤자 덕 볼 게 없겠다'는 표정으로… 남자가 돌아서고 나자 힘이 탁 풀렸다.
그 남자는 분명 사회적 약자다. 그런 약자의 눈에도 만만해 보이고 희롱할 수 있겠다 여겨지는 대상이 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직감적으로 서열을 알아채고 어린아이에게는 으르렁거리지 않던가. 그의 눈에 ‘보호자(남자)’도 없이 혼자 어리숙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자'가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낯선 남자가 다가오면 반사적으로 느끼는 공포가 나이 오십이 다 되어가는 데도 전혀 줄어들지 않다니…
남자가 떠나고 가슴이 좀 진정되자, 우습게도 나를 잠시나마 위협했던 그를 가엾게 여긴다. 그냥 하나 사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공격 대상이 나타났을 때 인간은 ‘투쟁’ 또는 ‘도피’ 반응을 나타낸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건 모든 인간이 아니라 남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반응이다. “여성은 오히려 아이와 환자, 노인에게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이들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 여자들은 도망가지도 싸우지도 않는다. 여자들은 그 자리를 쭉 지켜 나간다*.”
도망가지도 싸우지도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마침내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를 타자,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아름답다.
* 베니타 파우제 <냄새의 심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