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커우의 새로운 '일상'
여행을 떠나는 건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상’을 떠나는 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중에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간다.
하이커우(海口)에서의 하루 일과는 침대에 누워 해 뜨는 걸 천천히 보는 걸로 시작한다. 숙소 창문이 마침 동쪽으로 나 있어 매일 아침놀과 일출을 볼 수 있다. 새까맣던 하늘과 바다가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다 어느 순간 해가 말간 얼굴을 내민다. 일단 해가 얼굴을 내밀고 나면 어둠은 자취를 감춰버리고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바다가 아침을 연다.
해가 떠오른 바다를 잠시 바라보다 하루치 과일을 주문한다. 설마 메이투안(美团: 배달 앱)이 섬까지 될까 했는데 가능하다. 배송 시간이 베이징에 있을 때보다 조금 길긴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섬이라 물가가 높아 뭘 살 때마다 망설여지는데, 그래도 과일 값은 비교적 저렴하다.
파파야, 하미과 멜론(哈密瓜:’ 중국 황제의 과일’로 알려진 당도 높은 멜론), 망고, 각종 복숭아 등 몇 가지 과일을 섞어 시키면 먹기 좋게 썰어 보내 준다. 좋아하는 두리안도 실컷 먹었다.
더운 곳이다 보니 느지막이 문을 여는 숙소 앞 식당에서 훈툰(馄饨:만둣국)과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운 사오빙(烧饼)으로 늦은 아침을 먹는다.
이런 중국식 아침이야 베이징에서도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베이징에서는 훈툰을 먹더라도 샹차이(香菜:고수)를 빼고 먹는데, 여행지에서는 샹차이도 그대로 넣어 먹는다는 것이다. 거주지인 베이징에서야 주로 한국식 아침을 먹지 훈툰을 먹을 일도 별로 없지만, 먹는다 해도 샹차이는 절대 넣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다르다. 조금 싫더라도 낯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지혜로운 이들은 굳이 이렇게 고생하며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일상에서 그런 ‘여행의 감각’과 ‘여행의 마음’을 열어 두지만, 나 같이 좀 미련한 사람은 일상을 떠나야만 겨우 가능하다.
사실 훈툰에 샹차이가 들어가야 향긋하니 더 맛있다. 그럼에도 여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면 “부야오 샹차이(不要香菜: 고수 빼주세요)”를 외치겠지. 베이징이나 하이난이나 같은 중국인데, 그럼에도 일상은 일상, 여행은 여행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 중 만든 '새로운 일상'은 일상이 아닌가. 잠시 반복된다 해도 결국 짧게 끝이 나니, 여전히 '여행'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