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만 가면 쉴 수 있다"를 입에 달고 산 삶의 대가
몇 달 전부터 "여행만 가면 쉴 수 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온몸의 현을 있는 대로 팽팽하게 당긴 채 떠나는 날까지 몸을 혹사했다.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정말 여행 시작과 함께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이커우(海口)에 도착한 날 밤부터 목이 땡땡 붓기 시작하더니 다음 날 아침에는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37.5~37.9 도를 맴도는 미열이 계속되었고,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열 때문에 낯선 곳에서 병원을 찾아가기도 망설여졌고, 감기약도 없어 그냥 누워서 앓았다. 무엇보다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고 낮이고 밤이고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사흘쯤 죽은 듯 자고 일어나니, 목소리도 나오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병원이나 약이 필요해 보이던 때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살만해지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병원이든 약이든 찾아보게 되었다.
“여기 약국이에요, 병원이에요?”
“是看病的。(진료하는 곳이요)”
웨이썽푸우짠(卫生服务站)? 보건소쯤으로 이해하면 되려나? 여행이라기보다 '한 달 살기’다 보니 현지인 체험을 제대로 한다.
한 명이 모든 종류의 환자를 진찰하고 약 처방을 한다. 감기 걸린 나는 목구멍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 내가 말한 증상으로 이것저것 약을 처방해 주었다. 막내 아이가 귀에 물이 들어가서 답답해한댔더니, 귀를 들여다보며 이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는 걸 보면 병원은 아니다.
나보고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사람이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
요 며칠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서 몇몇 꼬마들이 우리 애들한테 계속 “와이궈런(外国人)”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놀렸다더니, 하이커우는 아직 외국인들 방문이 많지 않은 듯…
나 역시 싼야(三亚)만 여러 번 가봤을 뿐 하이커우는 처음이다.
하이커우 여행은 지독한 감기로 시작되어 '소원 대로'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며칠을 보냈다. 한 달 여행의 남은 기간, '온전한 쉼'이 뭔지, 여행 후 일상으로 복귀하면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