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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27. 2021

드럼 없이 멋지게 연주하는 법!

상상력을 잃지 않는 한 불가능은 없다

드럼을 처음 만져본 건 20대 후반. '한번 해볼까'로 시작한 일인데 어쩌다 보니 벌써 밴드를 몇 번이나 거쳐 왔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 만든 3인조 밴드 'Y-NOT', 컨설팅 회사 다닐 때 사내 밴드였던 ‘노마 밴드(Normative Band - 분석할 때 쓰는 용어 중 하나, 일종의 jargon), 그리고 함께 글을 쓰던 글벗들을 모아 만들었던 ‘날벼樂’, 목요예배찬양팀과 패밀리 밴드 YESS까지.  중간에 공백이 길긴 하지만, ‘20년 넘는’ 경력의 아마추어 드러머인 셈이다. 


드러머라고 하지만, 사실 단 한 번도 악기를 가져본 적 없다. 드럼 세트는 덩치가 크다 보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집에 놓고 연주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어찌어찌 그 큰 덩치를 잘 들여놓는다 해도, 방음시설을 완벽하게 하지 않는 한 집에서 연주하는 건 불가능하다. 전자 드럼을 사서 헤드폰을 끼고 연습하면 된다고 하지만, 밑에 카펫을 깔아도 베이스 드럼을 칠 때마다 아랫집에서 쿵쿵 울릴 테니, 층간 소음 갈등의 소지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습이 문제다. 악기가 없는데 어떻게 연습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주로 하는 연습은 머릿속으로 연주를 상상하는 일이다. 다양한 스포츠와 무용 등에 활용되는 이미지 트레이닝처럼. 겨우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는 것이 어떻게 실제 연습을 대신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 실제로 발레리나가 점프와 회전 등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동작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으로 실력이 향상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 뇌와 신경계가 가진 엄청난 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세라믹 디자이너 에바 지젤은 스탈린 정권 치하에 경찰에 붙잡혀 일 년이 넘게 모스크바의 루비얀카 감옥에 감금되었다. 지젤은 혹독한 감옥에서 주변에 있는 재료로 브래지어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보고, 머릿속에서 자기 자신을 상대로 체스를 두고, 불어로 가상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체조를 하고, 자신이 지었던 시를 기억해내면서 정신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베트남에 있는 정글 수용소에 감금되어 몸무게가 80파운드나 줄어들 정도로 모진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가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을 때 했던 첫 번째 부탁 중에 하나는 골프 경기 … 동료들이 어떻게 이렇게 잘 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그는 감금되어 있는 동안 매일매일 골프 클럽을 고르고, 어프로치 샷을 하고, 체계적으로 코스에 변화를 주며 18홀 게임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고 대답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중


얼마 전 읽은 책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심지어 감옥이나 수용소 안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발전할 수 있으며, 아무리 몸을 가두고 자유를 억압해도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드럼이 없고 앞으로도 쉽게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릎이 부실해서 드럼이 있어도 연습이 불가능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드럼을 멋지게 연주할 수 있다. 상상력을 잃지 않는 한 불가능은 없다.  


밴드 합주 때는 드럼을 진짜 만져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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