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짧은 시간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
우리는 무엇을 하든 당신이 그립다
오랜만에 패밀리 밴드 합주를 했다. 패밀리 밴드의 이름은 YESS. 네 식구의 이름 영문 첫 글자를 모아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산가족으로 남편과 떨어져 있느라, 밴드 연습에 완전체가 모이지 못했다.
YESS 가 아닌 ESS의 연주. 때로는 ES.
'Smells Like Teen Spirit'는 드러머로서의 첫 공연 곡이었다. 20대 때 처음 드럼을 배우겠다고 도전하며 3인조 밴드를 만들었고, 부족하지만 카페를 빌려 공연을 했다. 그때 맨 처음 연주했던 곡을 세월이 흐른 후 내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다니. 음악을 함께 하며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기뻤다. 20대의 내가 10대인 아이들과 만나는 것 같다고 할까. 아직 젊을 때의 내가 아이들과 어떤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을 묘하게 했고, 그 야릇한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과 내가 추억을 공유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게 추억이 담긴 곡을 함께 연주했을 뿐이지, 내 추억을 공유했다고는 볼 수 없다. 주어진 틀을 벗어나기 위해 드럼이라는 새로운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일이나, 드러머가 짧은 스커트를 입고 공연을 시도했던 일이라든지, 커트 코베인에 대한 젊은 날의 내 생각 등에 대해 아이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내 추억을 공유하느냐는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젊은 날의 추억을 꺼내 보는 일은 아이들이 아니라 내게 의미 있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도 나다. 아이들도 연주를 하며 기쁘고 행복했겠지만, 그 행복감은 내 추억과는 무관하다.
지난 10여 년, 아이들은 전 생애를 나와 같이 보냈지만 아이들의 추억 창고와 내 추억 창고에는 전혀 다른 장면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했다 해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니까.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가 점점 더 독립을 요구하고, 부모와 공유하던 많은 것을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길 원한다. 그럼에도 식구들이 한두 시간 함께 모여 같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엄마가 고른 음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나눠 주는 것도, 자기들이 즐겨 듣는 노래를 들려주고 함께 연주하자고 하는 것도 고맙다.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문득 기억 창고에서 추억의 음악을 꺼내 본다면 같은 음악일 지라도 20대 때의 버전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 연주했던 버전을 고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