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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30. 2021

사람이 바뀌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라는데...

'바뀐 삶'을 살아보기 위해 떠나는

"사람이 바뀌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시간 배분을 바꾸는 것.  
두 번째는 사는 장소를 바꾸는 것.  
세 번째는 만나는 사람들을 바꾸는 것.  

이 세 가지 요소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  
가장 무의미한 것은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오마에 겐이치 <시간과 낭비의 과학> 중


‘죽어도~’ 바뀌지 않는 게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이 바뀔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한 번에 경험해 볼 수 있는 게 여행이다. 


여행을 떠나온 후 일상은 해체되고, 여행지만의 '새로운 일상'이 생겼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던 아이들은 하이난에 온 후로 기상 시간을 늦췄다. 하이난에서는 해가 베이징보다 1시간 15분쯤 늦게 뜨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의 시간을 베이징 시간에 맞춰 두기에 생기는 현상) 바쁘게 처리해야 할 일 없이 하루를 보내고, 책을 한 글자도 읽지 않고 하루가 가기도 한다. 해뜨기 전 아침 바다를 산책하거나 늘어지게 낮잠을 자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일상


장소를 바꾼다고 사람 사는 일이 얼마나 달라질까. 나 역시 중국 국내 여행이라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심지어 하이난이라는 섬 안에서도 어느 지역, 어떤 숙소에 머무느냐에 따라 하루하루의 일과가 달라졌다. 싼야 대동해 (三亚 大东海)에서 매일 파도를 타고 다양한 식당에서 북적거리며 식사를 하는 일과가 젊은이의 것이었다면, 한적한 링쑤이(陵水)에서 천천히 산책을 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마작을 즐기는 일과는 노인의 것과 더 닮았다. 겨우 2주 사이 다른 세대의 삶마저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장소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여행지에서는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낯선 이들의 눈에는 내가 일상의 나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일 것이다. 며칠 전 막내 아이가 한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엄마, 아빠가 오면 그 아저씨가 이제 엄마한테 자기 차 타라고 안 할 걸.” 

“왜?” 

“엄마가 'dumb single parent'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빠가 나타나면 더 이상 속일 수가 없잖아.” 


싼야에 있을 때, 띠디(滴滴出行:Uber 같은 앱) 기사가 워터파크에서 하이난 시민 할인으로 반값에 산 표를 우리에게 되팔아 이익을 취한 적이 있다. 그걸 알아챘지만 모른 척해주었고, 싼야에서 링쑤이 올 때도 그 기사의 차를 이용했다. 그는 링쑤이에 내려주면서, 언제 싼야로 돌아가는지 물었고 그때도 자기를 부르라고 했다. (그 기사는 결국 다음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짧아 돈이 별로 안 된다고 판단하고는 정작 약속 시간이 되자 내 전화를 씹었다.) 


아이는 아이의 눈으로 현지인의 시선에 보이는 내 모습을 해석해 준 것이다. 현지인뿐 아니라 아이의 눈에도 여행지에서의 나는 어리숙하고 서툴다. (그래도 ‘dumb’은 심했다) 남편 없이 애들만 데리고 다니고 있으니 'single parent’로 보일 수도 있겠다. 아니 일시적이긴 해도 ’single parent’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dumb single parent'가 되기도 하는 것...


여행에는 끝이 있으니 이렇게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바뀐 삶'을 경험하고도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설사 돌아간 뒤 내가 살던 그 삶이 가장 나은 것이었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 해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저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 데 그치는 것보다는 낫다. 잠시 바뀐 삶을 살다 돌아가 바라보는 일상은 다른 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주 잠시 삶을 바꾼 거지만 내가 달라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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