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만연한 서열주의와 학벌주의가 문단이라고 없겠는가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당신 소설 당선 됐다는데?” 혹시 해외에 산다는 게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소설을 응모할 때마다 내 번호 대신 한국번호를 쓰는 남편의 전화번호를 대신 적곤 했다. 오래 기다려온 소식이었으니, 기절하거나 펄쩍 뛰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고요했다.
2017년 산문집을 출간한 후 에세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미등단소설가라고 여기고 있었다. 2011년 11월 1일부터 매일 새벽 세 시에 일어나 혼자 소설을 썼다. 소설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누가 소설을 쓰는 걸 본 적도 없었음에도 소설을 쓰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혼자 써 내려간 소설 작품이 꽤 된다. 그동안 등단이라는 자격증이 없어, 내 자식 같은 소설들을 출간하지 못했다. 내 품에서 나온 모든 작품이 독자를 만나지 못한 채 폴더 안에 갇혀 있다. 이제 그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는 걸까.
내일까지 사진과 등단소감을 제출하면 그토록 소원하던 소설가가 된다. 하지만 구름 위를 걸어야 할 내 마음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이런 거예요. 작가님도 저도 대학을 나왔잖아요? 근데 저는 듣보잡 지방 4년제 나왔으니 어디 가서 학교 얘기 안 해요. 근데 작가님은 서울대 나왔으니 자랑스럽게 프로필에도 쓰시잖아요? 그 차이예요.
소설 쓰는 지인이 명확하게 현 상황을 짚어주었다. 우리나라 곳곳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서열주의가 문단이라고 없겠는가. 아니 더 심하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내일까지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지잡대’도 괜찮아! - 등단 자격을 얻었으니, 더 이상 등단 목표로 눈치 보는 소설 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소설을 쓴다. 단, 역량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극소수의 독자만 만날 수 있을 것.
인서울은 해야지, 다시 도전! - 이왕 오래 도전해 온 것, 거의 온 것 같으니 다시 좀 더 규모가 큰 문예지나 공모전에 응모한다. 단, 다시 당선한다는 보장은 없다.
여러분이라면 저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