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Aug 13. 2021

왜 수많은 여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었을까

<어제 그거 봤어?> - 이자연

TV 속 여자들 다시 보기.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TV 등 영상 콘텐츠에 담긴 여자들의 모습을 꼼꼼히 되짚어준다.


"‘책상의 부재’는 대부분 여성 인물에게 해당됐다. 일기 쓰는 서민정,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을 자주 하는 이현경, 공부하는 황정음과 백진희. 이들은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읽고 쓸 때 책상이 없어 화장대에 앉아야 했다. 
... 
모든 시즌을 통틀어 공간의 크기와 열악함, 연령대, 주조연, 지적 수준, 성격을 막론하고 남성 인물은 전부 자신의 일에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책상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이자연 <어제 그거 봤어?> 중 


그러고 보니 TV 속 일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결혼 후 몇 년 동안 책상을 갖지 못했으니까.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남편에게는 ‘서재’를 만들어 주면서도 (심지어 그 안에서 책 보다 TV를 더 많이 볼 때도) 내게 책상을 준 건 한참 뒤 일이다. 식탁에서 쓴 원고를 출간하고 나서야, 집안에서 ‘내 책상’을 사수하기 시작했다. 책상은 그냥 가구 한 점이 아니니까... 


"책상의 부재는 단순히 가구 한 점 모자란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습, 사유, 성장, 발전, 상상 등 이토록 많은 단어가 책상에 담겨 있다.” 

이자연 <어제 그거 봤어?> 중 


이건 시작일 뿐이다. 

'왜 수많은 여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어제 그거 봤어>> - 이자연


이제 와 고백하건대 이 세상에 없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보편적으로 남성들 사이에 많이 쓰이는 이름 하나를 골라서 sns 계정 하나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들쑤시면서 “나도 같은 남자지만…”으로 시작하는 강력한 조언을 설파하고 다녔다. 내가 여자인 걸 아는 순간 내용이나 논리와 상관없이 남성들로부터 별의별 상욕이 뒤따랐기에 차라리 같은 성별이 되기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남성의 이름과 태도로 싸웠을 때의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매번 아주 쉽게 이겼다. 진짜 이자연이 SNS에 글을 올릴 때는 ‘페미는 정신병’, ‘팩트체크 확실하냐’, ‘너희 엄마 걸 수 있냐’ 등의 메시지가 날아오던 것과 달리, 남자의 모습을 한 이자연에게는 ‘양쪽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 정말 멋집니다’부터 ‘용기 있게 배우를 비판하는 모습 좋습니다’까지 각종 칭찬이 따랐다.

이자연 <어제 그거 봤어?> 중


남자로 짐작되는 필명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차현우' 같은 이름 뒤에서라면 쓰고 싶은 것들을 속 시원히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강' 날개를 뽑아 버리는 대신 잘 숨기고 버텨주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