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 정도면 괜찮은 엄마인데 억울하다?

얼마나 '존중받는 자'였는지 기억할 수 있기를...

by 윤소희

22살 대학생에게서 팬레터 (인스타 DM)를 받았다.

나 같은 어른, 나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젊은이가 있다니...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진다.


아이 2.jpeg 보민 작가님~ 덕분에 글 한 편 썼어요 ^^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데, 우리 아이들도 동의할까. 이 질문을 던지려니 두려워진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대할 때 내 ‘자녀’라는 생각보다는 동역자나 동반자로 대했다. 같이 여행할 때는 방향 감각 전무한 내가 엄마라고 앞장서기보다는 가장 어린 막내 아이에게 지도를 맡겼다. 막내 아이가 지도 보는 걸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막내 아이가 헤맬 때도 있었지만, 한 번 지도자로 세운 일에 나머지는 불평 없이 따랐고 그러다 목적지를 찾으면 함께 기뻐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른이라고 내 맘대로 해결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함께 기도했다. 선택을 앞두고 어느 길이 나을지 분별할 때도 아이들과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지 묻곤 했다. 함께 여행하고, 함께 글을 쓰고, 밴드로 모여 연주도 하며 아이들과 대체로 행복하고 사이좋게 지내왔다.


아이.jpeg
아이 1.jpeg


하지만 늘 순풍만 부는 건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춘기는 찾아왔고, 갈등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엔 몹시 낯설고 심지어 두려웠다. 정말 내 아이가 맞나 하는 어이없는 질문도 하면서. 며칠 전에도 아이와 경계를 넘을락 말락 팽팽한 대화를 몇 시간씩 이어갔다. 그 나이 때 나는 부모가 시키면 ‘네’ 하고 싫어도 따랐는데, 아주 어릴 적부터 자기 의견을 맘껏 얘기하며 자란 아이는 달랐다. 영어나 수학 학원을 보내거나 선행학습을 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건강을 위해 태권도를 배우자거나 7년 이상 배워온 바이올린을 그만두지 말자고 설득하는 일인데도 쉽지 않다. 대화가 길어지고 긴장이 감돌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억울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거나 성적으로 스트레스 준 적이 없는데, 아이는 왜 내 말에 조목조목 따지고 들까. 하지만 이 질문은 결국 내 양육 철학 자체를 공격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걸 분명하게 알고 그걸 쉽게 포기하지 않고 이뤄갈 수 있도록 양육하고 싶었으면서, 이제 와서 ‘왜 나한테 대들어?’하고 묻는 건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사춘기는 나보다 아이들에게 힘든 시기다. 가정에서 부모가 아무리 아이들을 긍정해 준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릴 적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공사장이나 주유소에서 일하는 아저씨, 트럭 기사, 서퍼, 돼지를 키우는 농부나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했고, 어떤 답을 해도 지지해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이들 입에서 ‘몰라’라는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이 부정당하거나 조롱당하는 경험이 가정 밖에서 조금씩 쌓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부족하고 서툰 생각일지라도 아이들의 생각을 쉽게 조롱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아이가 대화를 통해 스스로 생각의 뼈대를 튼튼하게 하고 그 생각에 풍성하게 살을 붙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러려면 ‘이 정도면 괜찮은 엄마인데 억울하다’하는 생각을 먼저 뽑아버려야 할 것이다. 때로는 논리적인 대화보다는 밖에서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무조건 안아주는 일도 필요할 테고.


사춘기는 곧 지나갈 거고,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날 날도 금세 다가올 것이다. 때로 팽팽하게 날 선 대화가 길어지겠지만, 어쩐지 그 시간마저 애틋하고 소중하다. 언젠가 아이가 세상 밖에 홀로 섰을 때, 함께 했던 날들을 따뜻한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한다. 특히 자기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고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여겨질 때, 자기가 얼마나 '존중받는 자'였는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가족이 있다는 걸 절대 잊지 않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