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원하고 또 그걸 아는 건 능력이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머리를 하러 갔다. 여행하는 동안 셋 다 머리가 덥수룩해졌기 때문이다. 머리를 안 감은 건 아니지만, 거의 한 달 동안 빗질 한 번 하지 않았더니 가관이었다. 머리가 길고 숱이 많은 막내 아이는 얼굴에 가면이 생겼다. 머리카락에 덮힌 부분은 햇볕에 타지 않아 하얗고, 드러난 부분은 새카맣고. 마구 자란 서로의 머리카락을 보며 한바탕 웃었지만, 셋 다 불만은 없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렸으니까.
머리를 하기 전날, 혹시 아이들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의 사진이 있으면 꼭 찾아서 보여달라고 했다. 혹시라도 원치 않는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속상해 할까 봐. 몇 년째 우리 머리를 해주는 디자이너가 그런 내 모습이 처음에 꽤 인상적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이 싫다고 해도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나 역시 그런 아이였다.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엄마가 좋아하는 헤어 스타일을 하는.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골라주는 대로 옷을 입는 건 심지어 첫 직장이었던 방송국을 그만 두고, 외국으로 멀리 떠나고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이십 대 중반 넘어까지 선택권이 없던 것이다. 스스로 선택을 해보지 않고 자라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가 많았다. 머리를 하러 가도 의견을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그냥 맡기는 편이었고, 나중에 혼자 속상해하곤 했다.
“You have discovered my ability to want.”
(영화 <Her> 에서 인공지능 사만다의 대사 중)
뭔가를 원하고 또 그걸 아는 건 분명 능력이다. 어쩌면 똑똑한 인공지능이 흉내내기 어려운 가장 인간적인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성취되는 작은 경험이 쌓여갈 때 개발된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걸 분명히 알고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내가 어떤 얘기할 것 같아요?”
1962년 탤런트 시험에 합격해서 2019년 기준 78세가 되기까지 우리의 안방을 넉넉하게 채워왔던 탤런트 강부자가 <마리텔2>를 통해 처음으로 1인 방송을 하게 되었을 때 던진 질문이다.
“저는 오늘 축구 얘기를 할 거예요. 축구 해설을 해보고 싶은 꿈이 있었거든요.”
80세에 가까운 할머니가 우리의 예상을 깔끔하게 무너뜨린 것이다. 이자연의 <어제 그거 봤어?>에서 이 예화를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여전히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뭘 원하고 또 좋아하는지 질문 받는 일도 드물지만, 어쩌다 누가 물어줘도 답을 잘 못할 때가 많다. 아직 서툴지만 조금씩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에 귀기울인다면, 80세 할머니가 되어서도 남들이 기대하는 답이 아닌 나만의 답을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