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시리즈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이들과 매일 20분씩 같은 주제로 글쓰기를 한 적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있을 때 했던 시도다. 돌아가면서 글 제목을 정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일종의 놀이였다. 아이들이 제목을 정할 차례가 될 때마다 '만약에~' 시리즈가 이어지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만약에~’ 시리즈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세상에 '만약에 내가 쥐라면’이라니.
세상에서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쥐다. 그런데 나보고 쥐가 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쥐가 되는 순간, 나는 죽고 말 것이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고 혐오하는 동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한강에 뛰어내릴 것이다. 고양이한테 막 덤빌지도 모른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으니까.
쥐가 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일단 가족이나 친구 쥐들을 보면 기절할 테니까. 거울은 볼 일 없겠지만, 내 발이나 징그러운 꼬리를 발견하는 순간 발작을 일으켜 숨이 넘어갈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 눈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어느 정도 시간을 끌 수는 있겠지만, 곧 쥐들이 찍찍 거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귀도 멀어야 한다. '헬렌 켈러 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내게 착한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자꾸 나를 도우려고 다가와 몸을 비벼 대거나 촉각을 자극할지 모른다. 쥐털이 내게 닿는다고 생각하니 소름 끼치고 곧 심장이 멎을 것 같다.
눈과 귀가 멀고 촉각도 마비된 쥐라니. 자살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제는 생존이 위험하다. 캄캄한 적막의 세계에서 누가 건드려도 느끼지 못한다니. 안전한 곳에 있다면 굶주려서 며칠 뒤쯤 죽을 것이고, 위험한 곳에 떨어졌다면 몇 시간도 못 버티고 죽을 것이다.
감각을 없애는 걸로 살릴 수 없다면 방법은 이것뿐이다. 두려움을 없애는 것. 바로 겁대가리 없는 쥐가 되는 것이다. 두려움이 사라졌으니, 고양이나 사람이 있는 곳도 두려워하지 않고 잘 다니겠지. 먹을 것만 눈에 띄면 차들이 다니는 찻길이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광장이든 거리끼지 않고 뛰쳐나갈 것이다. 겁대가리 없는 쥐는 금세 고양이의 눈에 띄어 잡혀먹든가, 사람의 눈에 띄어 죽임을 당하겠지.
아, 더 이상 방법을 못 찾겠다. 아무리 ‘만약에~’가 힘이 세다 할지라도 나와 쥐를 연결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쥐가 되는 순간 죽음만 있을 뿐. 쥐 대신 죽음을 달라! 어차피 죽을 거라면, 쥐가 되지 않고 죽을 권리를 달라. 나는 나로 살고 싶다, 가 아니라 나는 나로 죽고 싶다. 쥐가 되어 죽는 것만은 피하게 해 달라!
아들들, 듣고 있나? 나는 쥐가 싫다고! 엄마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인형 이름을 ‘마우스’라고 짓는 녀석, 너무해! 엄마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죄’를 꼭 틀리게 ‘쥐’라고 쓰는 녀석, 자꾸 그럴 거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가 아니라 나는 쥐가 싫어요! 제발 쥐로부터 벗어나게 해 줘. 나는 쥐라면 생각하기도 싫고, ‘쥐’라는 글자를 보기도 싫으니까. 엄마는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부디 쥐-free 환경에서 살게 해 줘. 제발!
(대표 사진도 관련 있는 '쥐' 사진은 도저히 걸 수 없어 피했습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