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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Sep 02. 2021

말의 품격, 듣기에도 품격이 있다

사랑하는 이들이 '말 화살'을 던질 때

상처를 주는 건 언제나 아끼는 이들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게 돌을 던지든 모래를 던지든 상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던지는 말은 단 한 마디라도 무게가 엄청나다.  


남편이 1차 백신 접종을 받는 날이었다. 저녁 약속을 잡았다는 말에 걱정이 되어 잔소리를 했다. 백신 접종 후에는 잘 쉬어야 하는데, 저녁 약속이라니.  

“중국 백신은 ‘물백신’이라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대.” 

그 ‘물백신’을 2차 접종까지 마친 내게 아직 접종 전인 그가 한 말이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는 거야? 갑자기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고, 남편은 바로 내게 ‘말 화살’을 쏘았다. 

“당신은 (사실이 아닌 것도) 들으면 다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이잖아.” 


1차 접종 후에는 접종했던 팔 전체가 쑤시는 통증이 사흘 정도 있었고, 2차 접종 후에는 두통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실제가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각종 소문을 믿은 결과'라는 것이다. 더 이상 대꾸할 수 없었다. 그대로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에 나는 이미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아무거나 덥석 믿어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바닥에 떨어진 존엄은 좀처럼 올라갈 기미를 보지 않았고, 나는 하루 종일 자신을 경멸하며 우울해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가슴을 후벼 팠다. 온라인 수업 이후 심각하게 굽기 시작한 아이 등이 계속 마음에 걸려 태권도 도장에 등록한 게 화근이었다. 줄넘기 한 번 제대로 넘지 못했던 아이가 태권도 도장에 가자 줄넘기 수백 개쯤은 거뜬히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지만, 키가 나보다 큰 아이가 어린 꼬맹이들하고 같이 수업받는 게 당연히 불편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꼬맹이’들이 빨간 띠, 검은띠 매고 있는데 흰띠를 매고서…  

“엄마가 직접 배우면 되지, 왜 내가 엄마 보호해 주기 위해 하기 싫은 걸 배워야 해?” 

아무리 감정이 북받쳐 오른 상태에서 내뱉은 말이라지만, 어이가 없었다. 아이는 정말 엄마가 자기 보디가드가 필요해서 아이를 태권도 도장에 밀어 넣었다고 믿는 걸까. 아이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호신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우리 동네에서 발생했던 ‘묻지 마 칼부림’ 사례를 들면서. 하지만 아이 말속 엄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마녀가 분명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한꺼번에 화살을 맞고 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이 불안정하고, 애들을 괴롭히는 마녀에 불과할까. 남편과 아이는 그런 나를 과연 사랑하고 있을까. 이 집에서 나만 사라지면 모두가 행복할까. 나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몸집을 불렸다.  


지옥 속에서 하루를 보낸 후 문득 ‘말의 품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통 ‘말의 품격’이라고 하면 말을 하는 사람과 그 말에 담긴 품격을 말한다. 그렇다면 듣는 사람의 품격과 듣기의 품격은? 말 한마디만 똑 떼내어 거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그 말을 한 사람의 삶과 태도, 나에 대한 마음 등을 총체적으로 보며 전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 


물론 화가 난다고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은 건 말한 사람의 잘못이다. 거기에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듣는 이의 품격이 그 말속의 충격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낯선 이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듣고 오해할 소지가 있지만, 가까운 이의 말이라면 당장 던진 말뿐 아이라 그와 함께 해온 역사 전체를 함께 들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내 편이 되어주고 한결같이 사랑해 주던 남편과의 지난 역사가 무심코 뱉은 한 마디에 무너질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던지는 독한 말은 여전히 화살이 된다. 하지만 그 화살에 맞고 쓰러질지, 맞지 않고 잡아서 화살의 독을 제거하거나 화살을 부러뜨릴지는 듣는 이에게 달렸다. 남편과 아이가 던진 ‘말 화살’ 때문에 계속 우울해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품격 있게 듣고 싶다는 마음이 '말 화살'을 잡아 주었다. 덕분에 남편/아이와 함께 그들이 던진 ‘말 화살’에 대해 비교적 평온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사과도 받았다. 


말의 품격.  

상대의 말을 ‘분절적’으로 떼어 듣지 않고 상대와의 전인격적 관계 안에서 ‘통전적(holistic)’으로 듣는 것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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