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작소> - 이만교
그동안 글쓰기 관련한 책을 100 권 넘게 읽었지만, 그런 책을 읽는다고 내 글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걸 안다. 한동안 미친 듯이 읽던 글쓰기 관련 책을 멀리하고 있던 중, <글쓰기 공작소>를 만났다. 최근 좋아하게 된 이은정 작가가 인스타에서 격찬한 것을 보고 집어 든 것이다.
<글쓰기 공작소>를 읽는 동안 글 쓰는 법에 대해 새롭게 배운 내용은 없다. 대신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두 가지 사실이 내 머리를 때렸다.
"꿈과 현실은 다를 수는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 가령 사진작가를 꿈꾸는 샐러리맨이 있다면 그는 틈나는 대로 사진과 관련된 정보를 탐색할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 보고 동호회에 가입하고 강의를 들어 보는 것은 물론, 무수한 사진을 직접 찍고 현상해 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전시회를 열고자 애쓸 것이다. 만약 동호회에 가입하는 정도에서 머문다면 그는 엄밀히 말해 ‘사진작가’를 꿈꾼 것이 아니라 ‘사진작가를 꿈꾼다면서 동호회 활동으로 만족하는 사람’을 꿈꾼 것에 불과하다. 그가 만약 한 번의 전시회로 만족한다면 그는 ‘한 번의 전시회로 만족하는 사진작가’를 꿈꾼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거기서 그대로 멈출 수 있겠는가.”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중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내 꿈은 엄밀히 말해 ‘적당히 출간 몇 번 하고 작가랍시고 휘젓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산만하게 하며 사는 삶’이었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삶이 드러내 주는 현실이다.
"무릇 필부필녀가 아닌 예술가 혹은 자유인으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의도로 거짓말하거나 사기를 치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거나 사기를 치고 있지나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중
악플이 달릴 만한 글을 쓴 적이 없다. ‘아내의 친한 친구임에도 이혼녀가 되자마자 껄떡대는 사내’의 에피소드를 담은 콩트 한 편이 유일하게 악플을 받았다. 겨우 악플 몇 개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고. 속에 쌓인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 하나도 꺼내지 못했다. 눈치를 봐도 너무 보는 것이다. 적당히 남들이 하는 이야기 선에서 경계를 넘지 않도록 끊임없이 수위조절을 하면서…
"가장 갑갑한 구제불능의 글은 별다른 결점이 눈에 띄지 않는, 그러나 하나의 기지조차 보이지 않는 매끈하게 다듬어지기만 한 글이다. 매끈하지는 않지만 한 구절이라도 살아서 반짝이는 문장이 좋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중)
처음부터 꿈이 그랬던 건 아니다. 글을 쓰면서 ‘실질적 정직’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글에 대한 열정을 잃고, 꿈이 변질된 것이다. 두 번째로 꼽은 이유가 사실 가장 큰 원인이었던 셈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결국 저자가 말한 ‘가장 갑갑한 구제불능의 글’밖에는 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데, 아무 답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나는 건 왜일까.
처음에는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몸을 숨긴 것뿐이었는데, 이제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두루뭉술한 인간’ 하나가 나인 척하며 살고 있는데, 이제는 그게 ‘나’인 것만 같아 나 자신조차 ‘진짜 나’는 어땠는지 까맣게 잊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나’를 찾아 솔직히 드러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데, 그 ‘나’를 찾기 위해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도 결국 글쓰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