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를 생각하다...
보통 맛없는 맥줏집에서 매일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데 누나들이랑 놀면 제일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대화의 질도 높아서 좋아요.
정세랑 작가의 대학 후배가 한 말이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함께 하면 누구든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고 반짝이는 생기를 더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빚어내는 건 분명 주변 사람일 것이다. 예를 들면 정세랑 작가의 부모 같은.
“먹는 것에도 입는 것에도 집을 가꾸는 데에도 심드렁한 채, 신발을 길에서 만 원짜리를 사더라도 책은 매주 사들여 탑을 쌓았다. 그런 부모님 곁에서 자라는 동안 나 역시 예술을 사랑하고 즐길 수밖에 없도록 빚어진 것이다. 믿을 수 없이 큰 혜택을 받고 컸다.”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중
일단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빚어지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빛과 생기를 나눠 줄 수 있다. 나이나 성별, 직업 등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그 주위로 모여든다. 혼자만 빛나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이 함께 반짝일 수 있도록.
하지만 ‘반짝이는' 사람이라 해도 어디서나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매력 있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는 자신의 빛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무리에 그냥 묻힌다. 주로 ‘다름'을 드러낼 틈이나 여백이 없는 모임이 그렇다. 보이지 않는 강력한 규제로 모두가 한결같을 것을 요구하는 집단에서는 어느 누구도 반짝일 수 없다. 알아서 자기 빛깔을 지우기 바쁘니까. 아주 작은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 일부 종교적 모임이 그랬고, 학원과 쇼핑 이야기와 뒷담화로 무한 반복되는 일부 학부모 모임이 그랬다.
팔색조라도 금세 무채색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얼른 벗어나는 게 좋다. 말하자면 “맛없는 맥줏집에서 매일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 한결같은 모임의 개수는 줄이는 게 낫다. 대신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섞여 다양한 다이내믹스를 기대할 수 있는 만남을 가지는 게 좋다. 내게는 10대부터 70대까지 나이, 성별, 직업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던 글쓰기 모임이 그랬고,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모인 아마추어 밴드가 그랬다.
하지만 나보다 젊은 사람, 하는 일이나 취향이 전혀 다른 사람이 나와 함께 하고 싶어 지도록 하려면, 결국 나 자신에게도 ‘반짝임’이 있어야 한다. ‘정세랑 작가’ 주위에 매력 있는 사람이 모이는 건지, 주위 사람들 때문에 ‘정세랑 작가’가 반짝이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질문과 같은 걸지 모른다.
반짝이는 사람 주위에 반짝이는 사람이 모이고, 또 그 주위에 모이는 사람 중에는 잊고 있던 반짝임을 찾기도 할 테니까.
(이 글은 인친인 '책여행' 님의 책 리뷰 피드를 보고 떠오른 생각을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