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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Sep 19. 2021

아들이 5년 동안 기른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아이

작은 아이가 5년 넘게 유지해온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여자 친구가 생겼냐, 무슨 심경의 변화냐' 같은 질문을 받았지만, 함부로 아이의 마음을 넘겨짚고 싶지 않다.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아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걸 뭘까'를 늘 고민해 왔다. 적당히 남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 했다.


어쩌면 고민은 작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두 아들을 겨우 13개월 차이 연년생으로 낳았다. 나이 차이가 적으니 두 아이는 친한 친구처럼 자랐다. 교복을 입고 스쿨버스에 나란히 앉아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쌍둥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 스쿨버스가 출발하기 전 기다림이 지겨웠던 큰 아이가 잠시 버스에서 내려 밖에서 놀다 돌아왔다. 그걸 발견한 선생님이 착각하고 작은 아이를 혼냈다. 작은 아이는 자기가 아니라고 얘기했고 심지어 큰 아이가 버스에서 내린 건 자기라고 잘못을 고백했음에도 선생님은 형제가 거짓말을 한다며 더욱 화를 냈다. 백인 선생님 눈에 고만고만한 동양인 형제를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3개월 차이 연년생 아들


그 후 작은 아이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자라는 동안 지저분하고 보기 흉한 기간을 아이는 흔들림 없이 잘 버텼다. 아이의 긴 머리를 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지만, 아이는 개의치 않았다. 더 이상 형과 자신을 헷갈리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반대가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싫어했고, 주위에서는 '계집애' 같다고 잔소리를 했다. '성 정체성' 운운하는 소리도 자주 들었지만, 아이는 그 누구보다 남자다웠다. 긴 머리로 축구장에서 골을 넣거나, 야구장에서 안타를 멋지게 날리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감탄을 했다. 아이가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한 결정이기에, 나는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서 늘 아이 편을 들었다. 그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기 자신이 되려는 아이의 노력이 제대로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꺾이는 것만은 막아주고 싶었다.


긴 머리였을 때


며칠 전 사람들 앞에서 가족 소개를 할 일이 있었다. 앞으로 나간 작은 아이가 머리를 숙여 길고 풍성한 머리 뒤에 얼굴을 전부 숨기는 모습을 보았다. 쑥스러워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얼굴 전체를 감추는 건 처음이었다. 지난 며칠 아이와 차분히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건데, 그 머리 뒤에 자신을 숨기고 싶은 건 왜일까. 몇 가지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도 아이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고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길고 탐스럽던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오는 길,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에게는 '겨우 머리카락일 뿐'이지만, 5년을 함께 한 머리카락을 떠나보낼 때도 애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저녁이 되자 활짝 웃으며 머리가 가벼워졌다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놓인다.


겨우 머리를 기르고 자르는 문제일 뿐이지만, 아주 작은 일이라도 엄마의 위치에서 갖는 권력을 휘두르고 싶지 않다. 아이의 생각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아이에게 성급하게 조언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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