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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05. 2021

책 읽는 걸 줄이라는 말씀만은 좀...

다양한 '안경'을 시의적절하게 바꿔 낄 수 있도록

너무 바쁜 거 아니냐? 좀 쉬엄쉬엄 해라.


요즘 부모님과 통화할 때마다 듣는 말이다. 모두 일흔이 넘으셨지만, 시부모님은 위챗 모멘트*로, 아빠는 페북으로, 엄마는 인스타로 매일 내 삶을 들여다본다. 하루에 최소한 두 번 이상 피드를 올리는 내 삶이 어른들 눈에는 혹사하고 있는 걸로 보일 수 있겠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것도 몸 상하니 읽는 걸 좀 줄여라.”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은 내 귀에 퍽 기이하게 들렸다. 바쁜 것도 사실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기저기 고장 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걸 잘 알기에 생전 거절을 잘 못하던 내가 최근에 거절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글쓰기 수업처럼 많은 이들이 원하는 보람 있는 일조차 여력이 안 되어 못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너무 힘들고 지쳤을 때, 주로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럴 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휴대폰도 멀리 밀어 놓는다. 소설처럼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실컷 읽고 나면 해독과 힐링이 된다. 그 시간만은 내가 오롯이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책을 멀리 하라니, 그건 숨구멍을 막아 버리는 일 아닌가.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인간관계’를 꼽듯, 나 역시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더구나 요즘 유행하는 MBTI를 봐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빼앗기고 혼자 있을 때 충전하는 I (Introvert: 내향적인) 타입이다. 책은 혼자 있는 시간을 충만하게 해 주고 나를 나답게 도와주는 매개이지,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다. 책 한 페이지 읽는 일조차 힘든 일로 여기는 사람이 있겠지만, 매일 읽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게 더 고역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꽤 많은 조언을 한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와주려고 건넨 말이 오히려 독이 될 때도 종종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안경'을 끼고 전혀 다른 세상을 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내가 감각하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는 내 ‘안경'을 끼고 봐야만 ‘바르게 보이는’ 생각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안경을 끼는 순간 그 생각은 찌그러졌거나 거꾸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팔팔한 10대 아들에게 추우니까 옷을 껴입으라고 주문하는 것인데, 말하는 순간 추위를 느낀 건 아들이 아니라 나다. 젊을 때 한겨울에 미니 스커트를 입어도 춥지 않았던 기억만 떠올릴 수 있어도 줄일 수 있는 실수다.


물론 나를 아끼는 이가 건네준 조언을 감사히 받는다. 내 ‘안경'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핵심을 꿰뚫어 보여주는 조언도 많기 때문이다. 설사 조금 비스듬한 조언을 들어도 잘 조정해 받으면 약이 된다. 책 읽는 걸 줄이지 않더라도 내 몸과 건강을 먼저 챙기라는 말은 깊이 새기는 게 도움이 되듯이. 좋아하는 책을 오래오래 읽으려면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오래오래 책을 읽으려면 글자를 읽을 수 있을 만큼의 시력과 꼿꼿한 허리가 있어야 하니까. 바쁜 시간을 쪼개어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을 하려는 건 그 때문이다. 누워서 오디오북을 들어야 할 시간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최대한 그때를 미루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읽고 있는 수많은 책들이 내가 다양한 ‘안경'을 시의적절하게 바꿔 낄 수 있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으며 오늘도 책을 집어 든다.  


*위챗 모멘트: 중국의 '카카오 스토리'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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