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도와 달라'는 외침이 들리나요?
한밤중에 아이가 갑자기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놀래서 깬 부모 앞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뭔가를 재촉했다. 잠을 쫓으며 귀를 기울였지만, 아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횡설수설 떠들다 돌아갔다. 잠결에 하는 아이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계속 반복되는 말이 있었다.
도와줘!
아이의 달라진 태도나 행위를 뭉뚱그려 '사춘기'라 부른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사춘기라 그래' 해버리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부모의 도움이나 관심 따위 필요 없다는 듯, 모든 것이 '쏘 쿨'이다. 도움 따위 필요 없다고, 아무 문제없이 잘 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이는 지금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이는 '도와달라'라고 계속 외치고 있었는데 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외침은 결코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는 걸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몰랐던 것이다. 그걸 듣지 못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부모가 '사춘기라 그래'하고 뭉뚱그려 정의해버리고, 관심을 끊는 동안 아이는 반복되는 좌절로 점점 더 무력해졌는지 모른다. 엄마는 어차피 모를 걸, 아빠는 어차피 돕지 못할 걸 하면서...
마침 전날 의외의 순간에 아이가 분노를 표출한 일이 있었다.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즐거운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화를 내며 물건을 던진 것이다. 그때도 아이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왜 계속 '도와달라'라고 했는데, 내 말을 무시해? 왜 도와주지 않는 거야?
그 순간만 해도 그저 '사춘기 발작' 정도로만 해석했을 뿐,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아이의 좌절을 읽지 못한 것이다. 아이가 미칠 듯이 화를 낸 건 당시 어떤 동작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모는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하며 어이없어했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인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하루 이틀은 아닐 것이다. 긴 시간 차곡차곡 쌓인 좌절이 그저 그 순간 폭발했던 것이다.
나쁜 아이가 되고 싶은 아이는 없을 것이다. 아이는 잘하고 싶다. 부모에게 칭찬도 받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때로 아니 어쩌면 아주 자주 부족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주눅이 들수록 칭찬 들을 일보다 야단맞을 일을 더 하기도 할 것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친구 관계든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것도 많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스스로도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지 깨닫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아이가 꿈을 꾸고 잠결에 뱉은 말. '꿈꿨나 보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말이었지만, 다행히 알아들었다. 겉으로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아이는 도움이 절실하다. 알아들었다 해도 솔직히 어떻게 도와야 할지 막막하다. 정확하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도움이 아이에게 필요한지 부끄럽게도 아는 게 없다. 아이는 늘 아무 문제도 없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행동해 왔으니까.
아이가 자기도 모르는 새 저렇게 간절히 외치고 있다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 최소한 도울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하고, 아이가 그걸 믿고 한 단계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 스스로도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잘 모를 수 있다. 최소한 스스로도 표현해내지 못하는 감정을 공감해주는 이가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엄마 아빠가 자기편이라는 걸 알고 그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어쩌면 사춘기 아이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속에 쌓여 있는 좌절이나 절망을 스스로 잘 알아채지 못하고, 표현해 내지 못하는 건. 꿈이라도 꾸고 잠꼬대라도 해야 무의식으로 밀어 넣은 진심을 조금이라도 알아챌 수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