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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것뿐인가요?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요?

선택지 너머를 볼 수 있는 눈

by 윤소희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 너머를 보기 어렵다. 어쩔 수 없다며 마음에 안 드는 선택을 하고는 불행해지곤 한다.


아이가 생애 첫 안경을 맞췄다. 아이가 멀리 있는 걸 보면 오른쪽 눈이 전혀 안 보이고, 가까운 걸 볼 때는 왼쪽 눈이 전혀 안 보인다는 말을 할 때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나 역시 좌우 시력에 차이가 있지만,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계속 온라인 수업을 하는 중이라 시력 체크도 할 겸 아이를 안과에 데려갔다. 오른쪽 눈은 근시, 왼쪽 눈은 원시, 즉 부동시(不同視)라는 진단을 받았다. 잘 보이는 한쪽 눈에만 의지하다 보니 아이는 입체나 원근도 잘 보지 못하고 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눈의 시력이 점점 빨리 악화될 거라는 말에 겁이 나 병원에서 바로 안경을 맞췄는데, 서둔 것이 화근이 되었다. 며칠 뒤 맞춘 안경을 받아 오자, 아이가 끼지 않겠다고 거부한 것이다. 분명히 안경테를 고르도록 선택권을 줬고, '아무거나'와 '모르겠어'를 일관하긴 했지만 마침내 스스로 고른 테였다. 아이는 다른 테로 바꾸지 않으면, 안경을 절대 끼지 않겠다고 버텼다. 눈이 머는 한이 있어도 안경을 끼지 않겠다고 버티는 데는 재간이 없었다. 친구가 세상의 전부로 느껴지는 중학생이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으니, 아이의 반응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난감했다.


아이가 대충 해버린 선택의 결과를 보면서, 살면서 비슷한 선택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떠올랐다. '이건 아닌데' 깨달았음에도 뱉은 말에 대해 책임진다는 심정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끝까지 밀어붙인 적도 있고, 남이 제시한 선택지가 전부인 줄 알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적도 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예감대로 불행해지거나 더 큰 문제를 끌어안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수많은 어리석은 선택에 비하면, 안경 하나 날리는 것쯤은 귀여운 실수에 불과할지 모른다.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너한테 있는 거야."

"그때 진열된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시력 검사를 위해 동공 확장시키는 약물을 넣은 상태라 잘 보이지도 않았고요."

"그 순간 마음에 드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해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시야가 뿌예져 잘 보이지 않는다고,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는데 다른 선택지는 없냐고 물었어야지."

"그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다른 걸 골라요?"

"시력을 정확히 측정했으니 그 진단서 가지고 다른 안경점에 가서 테를 고르는 방법도 있었어."


아이의 눈이 커졌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생애 처음 안과를 갔고, 처음으로 안경을 맞춘 거니. 누군가 곁에서 재촉하거나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바른 선택을 하는 건 어른이라도 쉽지 않다.


주어진 선택지만 보고 결정한 후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심지어 은행에서 정해진 이자율이나 환율조차도 다른 가능성이 있는지 묻고 요구하다 보면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걸 책에서 읽고 놀란 적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언제나 저 너머에 다양한 가능성과 선택지가 있다는 걸 너무 쉽게 잊는다.


아이는 다른 안경점에 가서 수십 개의 안경테를 써 보고 마음에 드는 안경을 새로 맞췄다. 이번에 나는 재촉하지 않고 오랜 시간 곁에서 기다려 줬고, 아이는 그 비용을 용돈에서 몇 달 동안 떼어 갚아 나가기로 했다. 밝아진 얼굴로 안경점을 나오면서 아이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매 순간 꼭 이렇게 물어보겠다고.


정말 이것뿐인가요?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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