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 당하는 아이를 볼 때
아이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갑작스러운 이메일은 보통 양극단 중 하나다. 아이가 상을 받게 되었다든지, 칭찬받을 일을 했다든지 하는 아주 기쁜 소식이거나, 아이가 뭔가 좋지 않은 일을 했다는 등의 나쁜 소식이거나. 클릭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이번엔 나쁜 쪽이었다. 아이가 던진 공 때문에 아이 친구의 노트북 컴퓨터가 고장 났다는 것이다. 실내에서 공을 던졌고, 친구의 얼굴에 맞았다 튕겨 나간 공이 노트북을 맞춰 부서졌다는 소문이 아이보다 먼저 도착했다. 내 아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소문을 듣고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와 대화를 해 보니, 소문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쉬는 시간 운동장에서 아이가 던진 공은 친구의 머리 위를 넘어갔을 뿐 친구를 맞힌 건 아니었다. 그 순간 친구가 들고 있던 노트북 컴퓨터를 떨어뜨려 고장이 났을 뿐. 친구는 게임을 하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그 주위에 모여 게임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는 게임을 멈추고 같이 놀자는 뜻으로 공을 던졌겠지만, 신중하지 못한 그 선택은 결국 원치 않는 결과만 가져왔다.
선생님에게 소환된 아이는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실내에서 던졌고, 친구가 맞았다는 등 선생님이 잘못 알고 있는 정보가 있었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친구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길 테고, 그 주위에 둘러 서서 보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친구 편에서 이야기를 할 거란 짐작에 입을 다문 것이다.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결국 4천 RMB (76만 원 정도) 정도의 수리비 배상과 아이가 학교 카운슬러와 상담할 것을 권유받았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도, 이제 열네 살인 아이는 '아무 문제도 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아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건 알아챌 수 있다. 쉬는 시간마다 축구나 농구를 하며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곤 했던 아이에게 이제 같이 놀 친구가 없는지 모른다. 값비싼 디바이스와 최신 게임으로 무장한 친구 곁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 심지어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도 아이 곁을 떠나 그 친구 뒤에서 게임을 구경하고 있다. 아이는 공을 던지며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를 좀 봐줘, 내가 여기 있잖아!
잠자리에 누운 아이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고, 잠깐 내 이야기를 했다. 아홉 살 때부터 당했던 '왕따' 이야기를.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하던 순간에 대해,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칠판에 내 욕을 가득 써 놓거나 내가 복도를 지나가지도 못하도록 겁을 주던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있지도 않은 일의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수군거림을 당하던 시절에 대해.
아이든 어른이든 따돌림당하는 일은 때로 죽음으로 이어질 만큼 치명적이다. 암환자보다 에이즈 환자의 자살률이 훨씬 높은 것을 보면 관계의 단절이 실제 죽음의 가능성보다 치명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속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다 보면, 누군가 저 멀리서 돌멩이를 만지작거리기만 해도 이미 돌팔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인간이 된다. 쉽게 부서지고 상처투성이가 되는 인간. 한동안 소셜미디어 닉네임도 'Wounded'를 썼다.
많은 아이들이 그 시기에 그렇듯 내 아이도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어둠의 터널에서 끄집어내 줄 수는 없다. 아이는 어떻게든 그 안에서 견뎌내야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곁에 가만히 있어 주는 것, 그리고 내가 겪은 어둠의 시절을 이야기해주는 것 정도일 것이다. 밝게 빛나던 시절의 아이 모습에 대해 아이가 잊지 않도록 이야기해 주기도 할 것이다. 어둠의 터널을 잘 지나 언젠가 아이가 스스로 빛 가운데로 걸어 나올 것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