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막을 거두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반쯤 열린 채 내장을 쏟아내는 서랍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구겨진 이불과 노트북 컴퓨터, 빈틈없이 어질러 놓은 책상. 방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건 나였다. 괜히 침대 위에 앉아 베개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방안에 떠도는 시금한 땀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겨우 하루 반 비어 있을 예정이지만, 주인이 영영 떠나기라도 한 듯 방이 쓸쓸해 보였다.
열다섯 살, 처음으로 홀로 길을 떠난 아들. 아이는 9년 동안 다녔던 학교를 방문하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행 기차를 탔다. 상하이-베이징은 1,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아이가 탄 고속 침대 열차 (D 카테고리)로는 12시간 걸린다.
20여 년 전 내가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두 밤을 자고야 쿤밍에 도착했을 때, 엄마도 지금 내 마음 같았을까? 아이는 기차에 타자마자 기차 내부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지만,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집 떠난 두 달 동안 엄마와 통화를 한 적도 거의 없었다. 어쩌면 춘지에(春节: 우리나라의 설) 기간에 룸메이트와 갑자기 떠난 윈난 여행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걱정이 많은 부모일수록 자녀들은 입을 다무는 법이니까.
아이는 집을 뜨자마자 실수를 했다. 차를 부를 때 목적지를 잘못 설정해 엉뚱한 곳에 내린 것이다. 지루한 여행자는 있어도 지루한 여행은 없다고, 엉뚱한 실수만큼 아이의 여행은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차 복도에 앉아 기다리다 젓가락이 없다는 걸 발견한다. 다행히 뜨거운 물속에 빠져 있던 작은 포크를 찾아낸다. 세수할 때 쓰려고 가져간 타월로 포크를 닦는다. 여행길에선 아무 생각 없이 이어가던 일상조차 낯선 모험이 된다. 소소한 문제들이 계속 있겠지만, 그걸 해결하면서 재미와 함께 지혜를 얻을 것이다. 평온한 일상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기지나 상상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홀로 세상에 내보내며 오만 것이 것들이 걱정되는 마음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이 주위에 두르고 있는 보호의 막을 거두지 않으면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는 한 스스로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불편해야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양쪽으로 3층씩 놓인 침대 가운데 자리가 아이의 자리다. 같은 칸에 아빠와 함께 온 두 아이가 있다고 아들은 말했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그 아이들은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지만, 이제 자기는 스스로의 보호자라는 뿌듯함이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비록 잠자리는 좁고 딱딱해 불편할지 모르지만, 아이는 기차에서 홀로 보낸 밤 행복했을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니까.
여행에서 돌아올 때, 아이는 부쩍 자라 있을 것이다. 부모와 떨어져 홀로 나아갔던 1,100 킬로미터만큼 자신의 지경이 넓어질 테고. 작은 껍데기 하나를 깨고 나와 그만큼 성장할 아이를 생각하면 나도 함께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