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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홀로 여행!

보호막을 거두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by 윤소희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반쯤 열린 채 내장을 쏟아내는 서랍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구겨진 이불과 노트북 컴퓨터, 빈틈없이 어질러 놓은 책상. 방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건 나였다. 괜히 침대 위에 앉아 베개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방안에 떠도는 시금한 땀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겨우 하루 반 비어 있을 예정이지만, 주인이 영영 떠나기라도 한 듯 방이 쓸쓸해 보였다.


WechatIMG10946.jpeg 창가에 서서 집 떠나는 아이를 본다


열다섯 살, 처음으로 홀로 길을 떠난 아들. 아이는 9년 동안 다녔던 학교를 방문하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행 기차를 탔다. 상하이-베이징은 1,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아이가 탄 고속 침대 열차 (D 카테고리)로는 12시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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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 베이징 행 고속 침대 열차 (D)


20여 년 전 내가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두 밤을 자고야 쿤밍에 도착했을 때, 엄마도 지금 내 마음 같았을까? 아이는 기차에 타자마자 기차 내부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지만,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집 떠난 두 달 동안 엄마와 통화를 한 적도 거의 없었다. 어쩌면 춘지에(春节: 우리나라의 설) 기간에 룸메이트와 갑자기 떠난 윈난 여행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걱정이 많은 부모일수록 자녀들은 입을 다무는 법이니까.


아이는 집을 뜨자마자 실수를 했다. 차를 부를 때 목적지를 잘못 설정해 엉뚱한 곳에 내린 것이다. 지루한 여행자는 있어도 지루한 여행은 없다고, 엉뚱한 실수만큼 아이의 여행은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차 복도에 앉아 기다리다 젓가락이 없다는 걸 발견한다. 다행히 뜨거운 물속에 빠져 있던 작은 포크를 찾아낸다. 세수할 때 쓰려고 가져간 타월로 포크를 닦는다. 여행길에선 아무 생각 없이 이어가던 일상조차 낯선 모험이 된다. 소소한 문제들이 계속 있겠지만, 그걸 해결하면서 재미와 함께 지혜를 얻을 것이다. 평온한 일상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기지나 상상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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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라도 포크를 발견한 아들 ^^


아이를 홀로 세상에 내보내며 오만 것이 것들이 걱정되는 마음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이 주위에 두르고 있는 보호의 막을 거두지 않으면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는 한 스스로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불편해야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양쪽으로 3층씩 놓인 침대 가운데 자리가 아이의 자리다. 같은 칸에 아빠와 함께 온 두 아이가 있다고 아들은 말했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그 아이들은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지만, 이제 자기는 스스로의 보호자라는 뿌듯함이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비록 잠자리는 좁고 딱딱해 불편할지 모르지만, 아이는 기차에서 홀로 보낸 밤 행복했을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니까.


WechatIMG11120.jpeg 3층 침대 가운데 누운 아들


여행에서 돌아올 때, 아이는 부쩍 자라 있을 것이다. 부모와 떨어져 홀로 나아갔던 1,100 킬로미터만큼 자신의 지경이 넓어질 테고. 작은 껍데기 하나를 깨고 나와 그만큼 성장할 아이를 생각하면 나도 함께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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