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 빌 설리번
한동안 극도의 불안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베이징의 '봉쇄 전야 증후군*' 때문이다.
솔직히 확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확진 자체보다 팡창(方舱·임시격리시설)에 끌려가는 걸 두려워할 뿐. 이미 상하이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확진자와 밀접접촉자 구별 없이 마구잡이로 격리하고 위생시설이 엉망이라 나치의 유대인 집단수용소를 방불케 한다는 비판이 여기저기 쏟아지고 있다. 한 달 넘게 봉쇄되었던 대학 기숙사 학생들은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목욕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도 번호표를 받아 허가를 받아야 쓸 수 있었다.
(*봉쇄 전야 증후군: 당장 내일이라도 봉쇄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증상. 제가 만든 말입니다.)
지난 몇 주간 스트레스와 불안을 달래기 위해 정크푸드와 밀가루, 설탕을 달고 살았다. 아직 완전 봉쇄가 된 것도 아닌데, 봉쇄된 것처럼 집콕하며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왜 내 몸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을까?
우리 위장관 속에는 약 10,000 종의 세균이 살고 우리에게 추가적으로 800만 개의 유전자를 공급하고 있다. 이 세균들의 무게를 모두 합치면 1.3킬로그램 정도 된다. 미생물총의 무게가 뇌의 무게와 맞먹는다는 얘기다. ... 우리 몸에 있는 세균 숫자는 사람 세포보다 수가 많다. 그러니까 우리라는 존재는 인간이라기보다 세균의 집합체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세균은 행동, 성격, 기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 빌 설리번
'우리라는 존재는 인간이라기보다 세균의 집합체에 더 가깝다'라는 저자의 표현을 읽다 빵 터졌다. 코믹한 표현이 머릿속을 시원하게 뚫어준 것이다. 유전자, 세균, 그리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온갖 특이한 힘들에 대해 읽다 보니, 가엾은 내 의지 탓만 할 게 아니라 내게 영향을 주는 환경을 먼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생물이 우리의 식욕을 조작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두 가지 잠재적 작전:
1) 세균이 만드는 화학물질이 뇌로 들어가 세균의 성장에 필요한 음식에 식탐을 느끼게 만든다.
2) 세균이 만드는 화학물질은 세균에게 필요한 음식을 먹을 때까지 우리를 기분 나쁘게 만든다. 따라서 세균은 우리의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식욕을 조절할 뿐 아니라 기분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정크푸드를 먹으면 운동을 하겠다는 동기가 극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건강이 이중으로 타격을 입는 것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 빌 설리번
나쁜 음식을 먹는 한, 운동하겠다는 동기는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우선 나쁜 음식을 끊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선순환의 길로 들어선 남편을 따라 아침에 조깅을 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봉쇄되기 전까지는 동네에서 조깅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봉쇄할 테면 하라지, 그 전날까지 나는 뛰어야지. 정크푸드를 줄이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불안과 우울감, 무기력도 많이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