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행패를 부리던 노인에게 저자는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었고, 노인은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들 며느리 이야기를 했다. 부서진 장롱 같은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하다 노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 (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
노인은 자신이 벌였던 소란과 소동을 성찰하기 위해 그 소동 자체가 아니라, 자기 존재가 주목받고 인정받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합리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해 볼 수 있으니까.
베이징은 5월 한 달 내 '준 봉쇄' 상황에 처해 있다가, 6월이 되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단오절 연휴를 맞아 두 아들을 집에 남겨 두고 남편과 근교로 여행을 갔다. 남편과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누군가가 대놓고 악플을 달았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의 관점과 참신한 비유를 존중하는 내용의 대댓글을 달았다. 다음날 아침 그는 정반대의 글을 타임라인에 올렸다. 내가 지적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댓글이 상대방을 화나게 할 수 있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내 성격에 죽었다 깨나도 악플에 악플로 대응하는 일은 없겠지만) 소심해서 실천에 옮기진 못했지만, 솔직히 악플을 갈기고 싶은 때가 내게는 없었겠는가. 사실 악플을 달고 싶을 때는 보통 피드의 내용이나 피드를 올린 사람과는 관계가 별로 없다. 그 당시 내 마음이 뾰족하고 심통이 나서 '아무나 걸려라, 쏟아내 줄게' 였을 뿐. 주로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을 때다. 이런 마음일 때 누군가 내게 틀린 걸 아무리 지적질하고, 바른말을 해봐야 나는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비뚤어질 테다' 할 뿐.
지난 반년 동안 매주 10권씩 책 나눔을 했는데, 그 기간 중 내가 나눔 받은 첫 번째 책이다. '제로 코로나' 방역으로 두 달 넘게 한국에서 책을 받지 못해 책 가뭄일 때라 책 선물이 귀하기도 했지만, 진짜 귀한 선물은 책 앞에 붙여 둔 작은 메모의 글이었다.
몇 달째 책 나눔을 하는 중에 욕을 먹기도 했다. 처음부터 칭찬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으니 마음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실은 많이 아팠다. 작은 포스트잇에 적힌 "뒤에서 조용히 응원합니다!!!"가, 그것도 느낌표를 팍팍팍 세 개씩 박아 넣은 그 응원이 나를 울렸다. 그 느낌표는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당신이 옳다!!!"고 내게 말해준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남은 반년 정성껏 책을 고르고, 고른 책을 포장하고, 짧은 메모를 쓰고 작은 선물을 함께 넣어 새로운 주인에게 보낼 수 있겠다.
바른말에 오히려 더 많이 찔리고 다친다. 그래서 저자는'충조평판 (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거라고 말한다. 입만 열면 '충조평판'이 먼저 튀어나오려고 하겠지만, 잠깐이라도 멈추고 심호흡을 해봐야겠다. 내 말이 누군가를 살릴 가능성보다 내가 참고 하지 않은 말이 누군가를 살릴 가능성이 훨씬 높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