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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04. 2023

나는 '네버 코비드'? 아니 '드림 코비드'!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존재하는 허상일 뿐

밤새 기침을 쉴 새 없이 하고, 목이 땡땡하게 부어오른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오한이 난다. 열이 펄펄 끓어오른다. 밤새 끙끙 앓다 새벽에 알람을 듣고 눈을 뜬다. 침대 속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지독한 감기나 독감을 앓을 때처럼. 아직 바깥은 어둡지만, 낮의 세계로 불려 나온 나는 더 이상 기침을 하지도 않고 목이나 온몸이 아프지도 않다. 세수를 하고 땀을 닦는다. 젖은 옷을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나는 이제 다 나았다.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새벽에 맞춰 둔 알람이 죽어가던 나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알람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당겨 설정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픔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커다란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며 일상을 모두 회복했을 때도 확진자 한 명만 나와도 건물이나 아파트 단지 단위로 봉쇄를 거듭하며 강도 높은 방역 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렇게 3년이라는 긴 시간 14억 인구를 꽁꽁 묶어 가둬 두며 통제하다 한 달 전 급작스럽게 위드 코로나로 전환을 했다. 공식적인 발표나 미리 준비하라는 경고의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모든 봉쇄가 해제되었다. 매일 PCR 검사를 하며 음성임을 증명해야 했는데, 하루아침에 걸리거나 말거나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고,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급속한 속도로 확진이 되며 쓰러졌다. 정책이 바뀐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지인들 절반 이상이 확진이 되었다. 봉쇄가 풀렸지만,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어 봉쇄를 하던 때보다 거리는 더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서로를 꺼리며 거리를 더 두었다. 여전히 격리, 봉쇄, 거리두기... 모든 게 똑같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달라진 거라곤 아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것뿐.


봉쇄 풀렸으니 나가도 된다고 했지만, 밖에는 온통 '양 (PCR 양성)'들 뿐이라는 풍자 사진



한 달쯤 지나자 이제 피크는 지나갔는지 확진자 증가세가 좀 감소되었다. 지인들 대부분은 확진되었다가 이미 다 나았거나 잔기침 등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나는 아직 '양'이 된 적이 없다. 아직까지 확진된 적 없다는 말에 지인들은 보기보다 면역력이 좋은가 보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넸다. 가끔은 혹시 내가 '네버 코비드'인가, 하며 내심 부디 그렇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확신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언제든 내 차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불안했다. 확진된 적 없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수록 불안은 증폭되었다. 


위드 코로나로 바뀌자마자 며칠 새 확진자는 급속하게 늘었다


'양'이 되는 꿈은 갈수록 더 자주 반복되었다. 밤새 앓다가 새벽에 맞춰 둔 알람이 울리면 그제야 거짓말처럼 나았다. 땀에 흥건히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나면 허탈했다. 이런 내가 과연 '네버 코비드'일 수 있을까. 어차피 밤이면 확진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증상에 시달리며 앓고 마는데. PCR이나 항원 검사에 두 줄이 나오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밤마다 증상이 발현되어 병을 앓고 있는 나는 어쩌면 '드림 코비드' 족인지 모른다.


새벽에 일어나 땀을 닦고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밤새 꾼 꿈을 복기해 보았다. 나는 정말 뼈가 쑤시고 침을 삼킬 수 없을 만큼 목이 아팠나? 솔직히 꿈속에서 그렇게 생생한 감각을 느낀 건 아니었다. 두려움과 아픔의 분위기가 안개처럼 밤새 나를 감싸고 있었을 뿐. 문득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일이 있기 전까지만 존재한다. 막상 두려워하던 일이 닥치고 나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고통은 막상 닥치면 별것 아닐 때가 많았다. 두려움의 역할은 고통을 피하게 하기 위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내게 겁을 주는 것일 뿐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 만들어낸 각종 상상과 허상이 두려움인 것이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병에 걸릴 필요는 없지만, 꿈은 그저 꿈의 자리에 놓아두는 게 필요하다. 꿈에서 죽음 직전까지 가도록 앓았다 해도, 실제로 내가 죽거나 고통을 감각하는 건 아니니까. 


밤이 오면 다시 증상들이 찾아올 것이다. 오늘 밤에는 내 몸을 덮치는 '양'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어야지. 이건 그저 '드림 코비드'일뿐이라고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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