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일에 조금 더 마음을 쓰는 사람
아이들에게 수제비를 해주려는 데 미리 우려낸 맛국물이 없다. 국 멸치 한 봉지를 쟁반에 쏟아 놓자 한숨이 먼저 나온다. 음식 만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중 싫어하는 일이 바로 멸치 다듬기다. 커다란 암탉이라도 한 마리 잡아 부위별로 손질하든가, 두툼한 고등어를 툭툭 썰어 토막을 내는 일이라면 모를까. 생선이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운 작은 멸치를 한 마리 한 마리 배를 갈라 똥을 뽑아내야 하다니.
말라비틀어진 멸치 한 마리를 손에 들고 잠시 망설인다. 손질하지 말고 그냥 끓일까? 들고 있던 멸치의 배를 무심히 가르니 시커먼 똥이 그득하다. 이대로 끓인다면 딱 이만큼 쓴 국물을 마셔야 하겠지. 순간 입김을 후후 불며 수제비를 떠먹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특히 국물을 좋아하는 막내 아이가 수제비 국물을 마시는 ‘호로록’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제야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멸치 한 마리 한 마리의 속을 깨끗이 비우기 시작한다. 멸치 뱃속에서 굵은 똥 줄기를 살살 달래듯 뽑아낸다. 마치 멸치의 염습 상례 사라도 된 듯, 똥이 제거된 멸치의 시신을 반듯하게 누인다. 탈지면과 거즈로 시신을 닦는 대신 멸치에서 떨어지는 가루를 깨끗이 털어낸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멸치를 다루다 보니, 평소처럼 대가리가 떨어지거나 몸뚱이가 부서지는 일도 없다. 멸치들이 속을 깨끗이 비우고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내 몸속 더러운 것을 함께 비운 듯 개운하다.
잘 다듬어진 멸치와 반듯하게 자른 다시마, 마른 표고버섯 몇 개를 물과 함께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5분쯤 팔팔 끓인 후 떠오르는 불순물을 걷어준다. 좀 번거롭지만 이렇게 하면 국물 맛이 훨씬 시원하고 깔끔하다. 5분쯤 더 끓인 후 다시마만 건져내고 다시 끓인다. 마지막으로 멸치 액젓을 조금 넣고 마무리한다. 멸치와 다시마, 표고버섯이 잘 우러난 국물 맛을 보니 평소보다 담백하고 감칠맛이 있다. 예전에 투덜거리며 건성으로 했을 때는 분명 덜 빠진 멸치 똥이 국물 맛을 쓰게 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멸치수제비의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기쁜 마음으로 우린 국물이라는 걸 혀가 알아챈 모양이다. 멸치 속을 조금 정성껏 비웠을 뿐인데, 요리의 전 과정이 즐거워졌다.
그러고 보니 양파도 아무렇게나 다지는 것보다 결을 따라 비스듬하게 해서 자른 후 다지면 훨씬 달게 느껴진다. 고기도 결대로 써느냐 반대로 써느냐에 따라 커틀릿에 적합하거나 스테이크에 어울린다. 기분 좋게 만든 음식은 식구들이 맛있다고 칭찬하지만, 투덜거리며 만든 음식은 먹는 이의 마음을 톡 쏘듯 날카롭게 찌른다.
사실 요리 솜씨가 없다 보니 달걀을 삶으면 터지고, 말면 찢어지고,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올리면 프라이도 스크램블도 아닌 모호한 요리가 되곤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음식 만드는 일을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라며 은근슬쩍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소한 것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니체의 말처럼, ‘멸치 똥을 빼느냐 마느냐’가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질문이 되기도 한다. 매일 먹는 밥이라도 잡곡의 비율을 조절해 맛있고 영양가 있는 밥을 짓기 위해 애쓰는 일,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남기지 않고 다 쓰기 위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는 일, 사랑하는 이들과 소박한 밥상을 함께 나누는 일은 소소하지만 소중하다. 멸치 속을 좀 더 정성껏 비운다고 해서 갑자기 일류 요리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아주 작은 일에 조금은 더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