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 <고요한 포옹>
9박 11일의 시칠리아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사랑하는 아들들 그리고 주문해 놓고 간 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고요한 포옹>
어른의 공부는 아이의 공부보다 막막하지만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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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아무에게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잘도 가져다 쓰지만 '진짜 내 선생님'을 갖기는 어렵다. 어른이 만나는 선생님은 어른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기에 어른을 외롭게 한다.
박연준 - <고요한 포옹>
마흔 넘어 바이올린을 배웠다. 6년 넘게 배우다 관두고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선생님을 구하기 미안해서다. 언젠가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으로 '어른 학생' 가르치는 일이 몇 배나 힘들어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짜증 난다'는 단어도 귀에 박혔다. 내가 배우고 싶다는 마음 만으로 누군가에게 말 못 할 고충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비브라토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좌절했기 때문이지만.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책임'을 생각한다면, 어른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지속'을 생각한다. 어른의 공부는 지속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어른에게는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온갖 이유가 생긴다. 어른은 공부를 쉽게 중단할 수 있다.
박연준 - <고요한 포옹>
어제 여행에 돌아와 여독이 전혀 풀리지 않았기에, 새벽에 루틴을 할까 말까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특히 바깥을 나가 몸을 움직이는 일은 장벽이 높다. 그럼에도 새벽 5시 걷기 루틴에 성공했다. 걸으면서 여전히 이탈리아어 공부를 했다. 이미 시칠리아 여행은 끝났고, 앞으로 언제 또 이탈리아를 가게 될지 알 수 없다. 다시 갈 가능성은 희박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 번 시작한 공부를 지속하고 싶었다. 이탈리아어는 너무 어려워, 하루 30분 공부로는 마치 넓은 바다에 한 방울씩 물을 붓고 있는 느낌이지만, 이탈리아어를 조금씩 알아가는 내가 좋다.
이 새로운 공부의 씨앗은 단테의 <신곡>이었다. 이탈리아어로 낭독해 주는 걸 듣자마자 이탈리아어에 매료되고 만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언젠가 단테의 신곡 일부만이라도 이탈리아어로 읽을 수 있다면 나의 이탈리아어 공부는 성공이다.
공부하(려)는 어른은 낡지 않는다. 몸은 늙어도 눈은 빛난다. 공부를 내려놓은 어른은 눈빛부터 굳는다.
박연준 - <고요한 포옹>
늙어가는 걸 막을 도리는 없지만, 최소한 낡아가는 건 늦추고 싶다.
나는 삼십 대 때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이십 대 때 내가 한 공부 덕에 쓸 수 있었다고 믿는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미친 듯이 읽고 보고 살고 부딪치고 깨지고 깨달았다. 중요한 건 이 순서다. 읽고 보고 살고 부딪치고 깨지고 깨달은 뒤, 그다음 '쓰고 싶은 마음'이 씨앗처럼 생겨났다. 깨달음이라 해도 대단한 성찰은 아니다.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눈의 힘'과 쓸 수 있는 '손의 힘'이 생긴 것뿐이다.
박연준 - <고요한 포옹>
나 역시 정확하게 이 순서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읽고 보고 살고 부딪치고 깨지고 깨달은 것을 썼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없다. 책을 읽는 일은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다른 존재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다. 책을 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될 확률은 낮다.
박연준 - <고요한 포옹>
다행이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 늙어도 낡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