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서사가 피해자의 눈물을 가릴 때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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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사정은 길게 말하면서


뉴스를 보다 보면 자주 마음이 멎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었는데, 정작 기사 속 중심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놓여 있을 때입니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고, 성장 과정과 가정환경, 심리 상태가 자세히 소개됩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주변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지까지 길게 따라붙습니다. 물론 가해자도 인간이고,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중요합니다. 법치국가라면 감정이 아니라 절차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같은 질문이 올라옵니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피해자는 삶이 무너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에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평범했던 일상은 끝났고,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너무 자주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사정에 더 오래 머뭅니다. 그럴수록 피해자는 한 번 당한 고통을 사회 앞에서 다시 겪게 됩니다.


인권 보호와 책임 희석은 다릅니다.


저는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가 고문당해서도 안 되고, 억울한 누명을 써서도 안 되며, 법의 절차 없이 함부로 처벌받아서도 안 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를 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최소한이어야 합니다.


그 선을 넘어서 가해자의 책임을 흐리고, 피해자의 분노를 과하다고 말하고, 용서를 강요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인권 보호가 아니라 책임 회피에 가깝습니다. 유독 피해자에게는 품위와 너그러움이 요구됩니다.


“이제 그만 용서하라”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않느냐”
“너는 죄 안 짓고 사느냐”


이런 말들은 얼핏 보면 균형 잡힌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피해자의 고통을 축소하는 말이 되곤 합니다.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이 자기 마음의 짐까지 덜어내기 위해 피해자의 용서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쉽게 피해자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는 일입니다.


피해자는 왜 자꾸 두 번 울어야 할까요?


범죄가 일어나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질문은 자꾸 피해자에게 향합니다. 왜 그 시간에 거기 있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더 조심하지 않았는지, 왜 바로 대응하지 않았는지 묻습니다. 잘못은 분명히 가해자가 했는데, 설명은 피해자가 해야 하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것이 바로 2차 가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는 사건 그 자체로 한 번 다치고, 사건 이후 사회의 시선으로 또 한 번 다칩니다. 법정에서, 언론에서, 온라인 댓글에서, 주변 사람들의 말속에서 계속 자신이 얼마나 피해자였는지를 입증해야 합니다. 상처를 증명해야 하고, 억울함을 설명해야 하며, 분노조차 정당화해야 합니다.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잘못한 사람은 변명을 얻고, 당한 사람은 증명을 요구받습니다.


저는 피해자의 인권이 무너지는 순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단지 신체의 안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을 해치지 않을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사건 이후에도 존엄을 계속 침해당합니다. 상처를 감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조용히 살고 싶어도 세상은 자꾸 피해 사실을 캐묻습니다.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특히 음주운전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참 무거워집니다. 여전히 많은 기사와 반응이 그것을 “한순간의 실수”처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술을 마신 뒤에도 누구는 대리운전을 부르고, 누구는 택시를 타고, 누구는 아예 차를 두고 갑니다. 하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반복적으로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을 보면, 결국 마음속 어딘가에는 “설마 큰일 나겠어”라는 안일함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이어졌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도 자신은 괜찮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사회가 음주운전에 대해 보여준 관대함이 그런 잘못된 인식을 키워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음주운전은 연예면 기사 한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의 죽음이고, 한순간에 부서진 인생입니다. 남겨진 사람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삽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 “반성하고 있으니 기회를 줘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실수가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잘못은 사과로 끝날 수 있지만, 어떤 잘못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차이를 흐리는 순간, 사회는 가해에 둔감해지고 피해에는 무심해집니다.


불우한 서사가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의 환경을 분석하는 일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재범을 막고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원인을 들여다보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설명은 어디까지나 설명이어야 합니다. 정당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불우한 가정환경, 가난, 결핍, 상처.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같은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버텨온 수많은 사람들의 삶까지 왜곡하게 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누구나 범죄자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안고도 남을 해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가해자의 서사가 반복될수록 피해자는 자꾸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었대.”
“그 사람도 힘들었대.”


결국 이것은 피해자에게 “네가 당한 일도 누군가의 사정 앞에서는 조금은 밀릴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그것보다 더 잔인한 말이 또 있을까요?


피해자의 눈물도 같은 무게로 다뤄져야 합니다.


저는 가해자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말보다, 피해자의 인권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말을 더 자주 듣고 싶습니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언론은 가해자의 사정보다 피해자의 회복과 보호를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회는 피해자에게 침착함과 품위를 강요하기보다, 분노할 권리와 슬퍼할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법은 가해자의 최소한을 보장하되,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법이 약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람이 세상을 완전히 원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음 범죄를 꿈꾸는 누군가도 쉽게 선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처벌은 복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처벌에는 분명한 메시지도 담겨야 합니다. 이 사회는 피해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것, 타인의 삶을 망가뜨린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 그리고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할 사람


가해자의 인권은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잔혹해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어야 합니다. 그 원칙이 어느 순간 가해자의 체면과 미래, 서사와 감정만 먼저 챙기는 방향으로 흐를 때 피해자는 또다시 사회에서 밀려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용히 배우게 됩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생각보다 큰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있구나.

피해자는 결국 혼자 견뎌야 하는구나.


저는 그런 사회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피해자의 자리에 먼저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가해자를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과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순서가 있어야 합니다. 범죄 이후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할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범죄를 당한 사람입니다. 피해자의 눈물이 가해자의 사정보다 가볍게 다뤄지지 않는 사회. 저는 그런 사회가 진짜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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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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