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취향

by 윤슬

“밥 먹자. 어서...”


읽던 책에서 지금 막 남녀가 만나서 본격적인 스킨십에 들어가는 찰나였다.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가 있기에 더 읽고 싶지만 혹시나 나의 은밀한 사생활이 들킬까 봐 보던 책을 놓고 밥을 먹으러 나갔다.


“눈 나빠지니까 너무 책만 보지 말고...”


엄마는 내가 유난히 책을 좋아하는 줄로만 안다. 그건 사실이다. 난 책을 좋아한다. 아니 환장한다. 흔히 말하는 청소년 필독서는 거의 다 읽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야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음란한 부분을 찾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부모님은 내가 책에 빠진 이유를 모르시고 맨날 책을 읽어대는 모습에 흐뭇해하신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두꺼운 책도 진득이 펼치고 읽는다. 그런 책들이 얼마나 야한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북회귀선?


파격적이고 적나라하고 격렬한 성묘사 때문에 오랫동안 외설 작품이라는 오명으로 판매금지를 면하지 못했던 이 소설이란다. 이런 책이야말로 나를 위한 책임에 틀림없다. 내 반드시 읽고 말리라. 수소문하여 책이 있다는 도서관에 갔다. 두근거리며 선반에 놓인 책을 보았다. 누가 볼까 그리고 그 책은 너같이 어린 학생이 볼 수 없다고 제지 당할까 봐 조심조심 책을 펼쳤다.


에게.... 이게 뭐람?


잔뜩 기대했던 나는 형편없이 낮은 성적 묘사에 이게 왜 문제 작품인지 이것을 문제 삼은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문제라고 생각했다. 낚인 것인가? 심하게 분통이 터졌다.


그 시절 그러하듯 나도 자연스레 H.O.T 팬이 되었다. H.O.T는 광적인 팬덤을 형성하여 팬질 역시 활발했다. 팬질을 하게 되면 글 좀 쓴다는 이들은 팬픽을 썼다. H.O.T 팬픽 중에 단연코 일등은 H.O.T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멤버 간의 사랑을 다룬 BL(boys love)였다. 뭐랄까? 아몬드 봉봉과 체리주빌래를 같이 먹는 기분이랄까? BL에 빠지면 정말 답도 없었다. BL 장르를 극혐하는 사람도 많지만 굉장히 큰 시장이고 두터운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이런 내가 드디어 야설 작가가 되었다. 내가 야설을 쓴다는 것은 물론 아무도 모른다. 필명을 쓰고 있고 어디 밝히기도 그렇다. 아마 대부분의 야설 작가들이 그러할 것이다.


“야... 너 이제 곧 30이야. 아직 모쏠이라는 게 이게 될 일이냐?

맨날 집구석에나 처박혀 있지 말고 남자 좀 만나. 니가 보살이냐? 수녀야?

그냥 클럽 같은 데 가서 원나잇이라도 해! 30살까지 안 하면 하늘로 날아간대..."


그렇다. 나는 야한 것을 좋아하고 야설을 쓰지만 아직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사실 궁금하긴 하다. 상상하던 것이 실제는 어떨지... 그와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상상한 것보다 별로면? 아예 몰랐던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상상으로 남자를 만나다 보니 실제 남자에게서 아무런 흥미를 못 느끼겠다. 소설 속 남자는 현실에 없다.


’이 작가 정말 숙맥일 듯... 어디 모쏠이 쓴 거임!‘


들킨 건가? 내 소설에 이런 댓글이 달리다니... 역시 상상만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실제 경험을 해야 되는 것인가? 댓글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니까 니가 야설을 썼다는 거지? 와 진짜 남자 손길도 안 닿은 니가? 어매이징하다야.”

“이제 어쩌면 좋냐고?”

“남자 만나 막 만나 이놈 저놈 가리지 말고 막 만나. 그리고 막 해.

너는 그동안 안 한 것으로 치면 부지런해야 된다니까... 그래야 따라잡아!”


그래 결심했다. 이제 실전이다.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새로운 시작이다. 한번 해 보는 거지 뭐.


쿵쿵 음악이 울려 퍼지는 클럽문을 나는 힘차게 열었다. 마치 오래전 책을 펼쳐 처음으로 19금 장면을 읽었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