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채린아 우리 이번에 동창모임 거하게 할 예정이야. 너 꼭 나와”
“꼭 가야 되는 거야?”
“그럼 꼭 와야지.”
“난 별로 가기 싫은데.”
“왜 오래간만에 친구들 보고 좋잖아.”
“글쎄...”
“그러지 말고 꼭 와 알겠지?”
친구가 신신당부했다. 해마다 있는 동창 모임이다. 처음에는 순수한 동창 모임 같았으나 점점 자기 자랑 대잔치로 흘러버렸다. 거기서 난 어떤 공감대도 형성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모임에 나가기 싫어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모인다고 하니 한번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 채린아 오랜만이야”
“응 오랜만이지?”
“넌 아직도 결혼 안 했어?”
“뭐 그렇지 모.”
그때였다. 별로 친하지 않은 동창생이 말을 걸어왔다.
“너 어쩌려고 그래? 결혼도 안 하고.
너 곧 마흔이다. 마흔이면 남자들이 거들떠도 안 봐.”
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그 친구와 말싸움이 벌어졌다.
“뭐라고? 남자들이 안 보면 어때서?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있는데?”
친구들은 둘 사이에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말리기 시작했다.
“넌 말을 왜 그렇게 하니 채린이 기분 나쁘게.”
“채린아 진정해. 재 원래 좀 그렇잖아”
간신히 싸움은 멈췄고 난 그냥 동창회를 나왔다.
친한 나영이 따라나섰다.
“채린아 화 풀어. 오늘 좋자고 모였는데 이게 뭔지.
나름 너를 위한다고 한 말일 꺼야. 너무 기쁜 나빠 말고 알겠지?”
“그게 어떻게 나를 위한 말이야! 하여간 다신 재 안 봐! 그렇게 알아.”
그렇게 말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별일을 다 겪는구나. 서글프고 슬펐다.
“아저씨 이태원으로 가 주세요!”
오늘 밤은 그냥 집에 있을 순 없을 것 같았다. 자주 가는 바로 갔다. 칵테일을 마시면서 아까 있었던 일을 곱씹어 봤다. 내가 그리 만만한가? 본인은 결혼하고 애 낳더니 살도 안 빠졌으면서 그러는 네가 더 남편이 거들떠도 안 보겠다. 아까부터 자꾸 대각선 쪽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준다. 그래 봐 나 아직 안 죽었어. 근데 꼭 여자는 남자한테 추파를 받아야 되는 건가? 안 받아도 상관없지 않나?
“혼자 오셨어요?”
“네”
“저도 혼자 왔어요. 합석해도 될까요?”
순간 잠시 고민했다. 이 기분에 합석해도 될지 아님 그냥 있을지 어느 것이 내 기분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알 수 없었다.
“네, 괜찮아요”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아니에요. 전 가끔 와요.”
“주말이고 해서 오신 건가요?”
“사실 오늘 동창회가 있었는데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냥 나왔어요.
집에 가기 뭐해서 왔어요.”
“전 오늘 약속이 없어서 심심해서 나와 봤어요.”
그는 어느 기업 사내 변호사였다. 옷도 젠틀하게 입고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맘에 드는 눈치였다.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디자이너예요.”
“와 디자이너 멋있어요.”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전 그렇게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저는 딱딱한 법적인 일만 하거든요.”
“에이 뭐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해요.”
그렇게 친해졌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도 이야기했다.
“그 친구 분이 너무 하셨네요.”
“그렇죠?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닌데 그런 막말을 하더라고요.”
“요즘 연예인들 보세요 40 넘어도 멋진 분들 얼마나 많은 데요.”
“그건 연예인이고요.”
“연예인 아니 여도 요즘은 나이로 사람 평가하고 그런 세상 아니에요.”
“그렇게 위로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자신에게 좀 더 자신감을 가지세요.”
자신감을 가지라는 그의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나도 모르게 그랬나 보다.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졌다 보다. 주변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듣다 보니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문득 나 자신에게 미안해져 왔다. 나를 돌보지 않은 기분이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본단 말인가?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이만 일어나 봐야겠어요.”
“아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혹시 연락처 물어봐도 되나요?”
연락처를 줘도 되나? 고민이 되었다. 좋은 사람 같았지만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죄송한데 연락처는 알려드리기가 좀 그렇네요.”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헤어지고 집으로 왔다. 새벽 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집에 와서 보드카를 한잔 더 마셨다. 난 양주가 좋아. 술에 종류가 여러 가지이지만 채린은 양주를 좋아했다. 특히 보드카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괜스레 마음이 센치해 졌다. 서럽기도 하고 위안받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이 밀려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이 정답인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혹자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서 척척 그 리스트를 해내가지만 채린은 그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내면을 그렇게 잘 아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이 있을 거야. 남들 방식을 보고 흉내 내려하지 말자. 채린은 그렇게 다짐했다.
다음날 채린은 운동을 하려 헬스장에 갔다. PT를 열심히 받고 있었다. 채린은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운동도 곧잘 해서 이것저것 도전해 봤다.
“먼저 스쿼트부터 할게요.”
PT강사의 지시에 안 쓰던 몸을 움직인다. 처음에는 고통스럽지만 점점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운동을 하니 어제 받았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다. 그래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되는 거야.
“누나 오셨어요?”
진호였다.
“너도 운동하러 왔구나. 난 요즘 좀 게을렀는데.
넌 엄청 열심히 인 것 같네. 몸이 장난이 아닌데... “
“누나가 안 놀아줘서 운동만 했어요. 농담이에요.
애인도 없는데 열심히 운동이나 해야죠. “
“나도 꾸준히 했어.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
“누나 오늘 운동하고 약속 있어요? 없으면 술 한 잔 해요.”
“난 별 일 없어. 그러자.”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진호랑 근처 호프집에 가서 자조 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런 사람 말 귀담아듣지 마요. 누나.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잖아요. 모두 똑같이 살 순 없어요. “
“나로 그렇게 생각해. 그러다가도 사람들한테 한 소리 들으면 또 흔들거려.”
“기분은 나쁘죠. 그런 소리 들으면...
그런데 그 친구 분은 너무 했다. 예의가 없는 분 같아요. “
“고마워 위로해 줘서.”
“전 언제나 누나 편입니다.”
이렇게 진호는 언제나 살갑게 군다. 가끔 선을 넘어올 때도 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러려니 하고 있다. 나보다 8살이나 어린 29살. 아직은 풋풋한 20대이다.
“누나 나 내년에 30살이에요.”
“오 축하해. 30대 입성을.”
“축하할 일이 아니라고요. 저는 심각해요.
전 30살이면 엄청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거든요. 누나처럼요.”
“나? 내가 어른 같아? 아니야.”
“제가 보기에는 누나는 멋진 어른 같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미성숙하고 가치관 정립도 아직 덜 되었어요.”
“나도 그래. 네가 그냥 보기에 그래 보일 뿐이지.”
30살! 나도 진호처럼 30살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적인 있었다. 그러던 내가 시간이 흘러 이제는 곧 마흔이구나. 지금 생각하면 30살도 무척 어린 나이이다. 그럼 지금의 나이도 어린 나이인가? 먼 미래에서 보자면 그렇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많은 나이이다.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을 부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세상이 곧 끝날 것 마냥 굴었다. 30살이 되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느낌상 나이 30이 어색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30살의 나이도 익숙해졌다. 사귀던 남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일에만 몰두했다. 내 인생에 남자는 없다면서 일만 했다. 그런 고민들을 똑같이 하는 진호를 보니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세상 안 끝나! 30이 되어도 세상을 굴러간다고 20대의 삶처럼.
앞자리만 변했을 뿐이야. 거기에 연연하지 말고 살아가.
꼭 나한테 하는 말 같네. “
“누나 그러네요. 그 말 누나 자신에게 해야 될 것 같아요.
위로받으니 그래도 좀 낫네요. 엄청 조바심 났거든요.
세상사 고민의 끝이 없군요. 누나도 그런 고민이 있군요. “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완벽한 사람은 없어.
그럼 너무 스트레스받아. 적당히 자신의 모자람을 받아 들어야지.
근데 진호 장점도 많잖아. 너무 고민 마. 진호는 멋진 30대가 될 거야 “
“제 장점이 먼데요?”
“일단 싹싹하고 성실하고 긍정적이고 운동 열심히 하고
그리고 키도 크지 잘 생겼지. 직업 탄탄하지. 뭐 빠지는 게 없지.
내가 여동생 있으면 소개하여 주고 싶다니깐. “
“누나는요?”
“응?”
“누나는 저 어떻게 생각하시는 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