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0-20210321 (부제: 감성과 현실)
브런치에 올라가는 순서 상으로는 세 번째 캠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게 나의 첫 번째 캠핑이다. 드라이브에 묵혀지고 있는 사진들이 아까워서 생각이 나는 것부터 쓰다보니 순서가 이렇다.
첫 캠핑에는 내 장비가 거의 없이 친구 아버지의 장비를 빌려서 떠났다. 내 장비는 침낭, 베개, 버너, 의자, 작은 난로 정도고 나머지 텐트, 매트, 코펠, 테이블 등등은 모두 친구 아버지가 빌려주셨다.
그나마 나에게 있던 장비들은 올해 초부터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캠핑 의자 한 개, 사이드 테이블 한 개, 버너 한 개 이렇게 띄엄띄엄 구매한 용품들이다. 캠핑을 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차도 첫 차인 모닝을 몰던 때라서 과감하게 텐트를 산다던가 하지는 못하고 경량 장비만 조금씩 샀다.
이미지는 내가 쓰고 있는 다이어리에 2021년 위시리스트 중 일부다.
올해 안으로 언젠가 한 번은 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킷리스트에 '캠핑도전하기'라고 쓰긴 했지만 언제 갈지 기약은 없었다.
이건 딴 얘기지만, '캠핑도전하기' 옆 칸의 '요령껏 회사다니기'는 망했다. 요령껏 못 다니고 퇴사를 했기 때문. 이외의 위시리스트들은 하려고 시도는 해보고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첫 캠핑은 '선미님 캠핑 가실래요? 장비는 저희 아버지꺼를 가져갑시다'라고 해준 친구 덕에 시작할 수 있었다. 이슬아 작가의 <접속사 없이 말하는 사랑> 을 읽고 나서 '그런데', '그래서' 같은 접속사 사용을 최대한 줄여보려 노력하지만 여기에는 '그러니까'를 쓸 수 밖에 없다. 첫 캠핑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 친구의 덕이기 때문이다.
다들 도전의 처음은 어떻게 시작하는 걸까? 나는 친구들에게 용기를 빌려 시작한다.
첫 캠핑 식사는 역시 삼겹살이다. 캠핑의 첫 날은 밥만 먹어도 밤이 되어버린다는 걸 알았다.
우리의 배를 과소평가하며 사온 고기가 결국 모자랐다. 역시 밥을 먹고 장을 보는게 아니었다. 다음날에 아침으로 먹기로 한 라면을 끓였다.
밤이 왔다. 추웠다. 엄청 추웠다.
산 속의 밤은 여름에도 춥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다. 사진 속 인물은 앞으로도 자주 나오게 될 텐데 나는 아니고 친구다. 이 사람도 이 날이 첫 캠핑이었다.
물을 끓여 날진 통에 넣고 안아도 보고, 작은 난로도 켜보고 했는데 여전히 추웠다. 산속의 추위에 부슬부슬 비까지 와서 뼈가 다 시렸다.
유투브나 블로그를 보면 다들 깔끔하고 예쁘게 캠핑을 하던데 어떻게 하는걸까? 이 첫 캠핑 이후로 세 번이나 더 캠핑을 갔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캠핑은 세 명이 갔다. 아버지 장비를 빌려준 친구 A씨, 위에 사진의 B씨 그리고 나.
A씨는 평소 아주 실용적인 인상이고 B씨는 감성 맥시멀리스트다. B씨와 나는 캠핑을 유투브로 배웠고, A씨는 대학시절 산악부에서 배웠다. B씨와 나는 캠핑을 가기 전에 굳게 다짐했다.
"A씨가 우리의 감성을 절대 챙겨주지 않을 것이니, 우리의 감성은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해. 감성 꽉 잡아~!"
현실은 춥고 참혹했다.
우리에게 남은 감성이라고는 A씨가 한강 어딘가 좌판에서 샀다는 파인애플 조명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추워서 밤에 잠을 내내 설친 B씨는 내 동계 침낭에 들어가서 아이처럼 곤히 잤다.
비가 왔다가 안왔다가 꾸물꾸물한 날씨여서 A씨와 나는 서둘러 철수를 했다. 느즈막히 일어난 B씨는 끝까지 감성은 챙겨야 한다며 바리바리 가져온 커피 도구들로 드립 커피를 내렸지만 커피를 내리던지 말던지 텐트를 빨리 허물어버리고 싶은 두 사람의 등쌀에 밀려서 내리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났다.
첫 캠핑인데 철수하는 날 비가 내려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빌려준 텐트가 쫄딱 젖어서 온 것을 보신 친구의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셨을지... 다시 한 번 감사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전날 캠핑장에 들어오면서 봐두었던 오리고기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고향나들이라는 집인데 꽤나 유명한 맛집이었는지 사람이 많았고, 맛도 있었다. 근처에 가게 되면 꼭 다시 들리는 음식점이 이 날 하나 생겼다.
글의 마무리는 우리의 건배사로 하겠다.
아줌마들의 우정은 디질때까지! 아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