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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미 May 20. 2021

1박 2일 포천 여행

20210401-20210402 (부제: 여행의 한가운데 만난 사람)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이후로는 해외 여행을 꿈도 못 꿨지만 2019년까지만 해도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배낭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아직도 내 에너지의 근간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길을 혼자 떠나기 때문에 만나는 모든 인연에 활짝 열려있다. 주변에 오래된 인연이나,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주로 만나는 한국에서의 인간관계와 다르게 여행길에서는 누구하고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오늘 만난 언니와 다음 도시로 떠날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한 나라의 첫 도시에서 만난 인연 덕분에 한 달간의 여행 계획을 다 바꿨던 적도 있었다.


이번에 푸른산페어웨이로 글램핑을 같이 간 친구는 호주에서 만났다. 그리고 거의 세네달을 같은 집에서 살았다. 그 집에 우리 둘만 산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내내 데면데면 했기 때문에 그 때의 생활을 떠올리면 대부분 이 친구와의 추억밖에 없다. 둘 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일을 하러 온 사람이었고 다니는 직장이 같아서 매일 출근과 퇴근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놀기도 같이 놀고 아무튼 모든 생활을 다 이 친구와 했다. 노지로 캠핑도 다녔다.


새벽 출근길


몽롱한 상태로 보는 새벽 출근길


가끔 출근길에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이 친구는 나보다 약 열 살쯤 어리다. 가끔은 왜 젊은 애들 놔두고 나이 많은 나랑 놀까 궁금했다.


"누구야. 왜 나랑 같이 놀아?"


그럼 주로 대답은 두 가지 였다. 


"난 언니랑 노는거 좋은데?" 

"그치? 젊은 애가 놀아주니까 신기하지?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예예 그래야죠.


"젊은 애가 놀아주니까 신기하지?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의 화자


이 친구가 휴일을 맞아 먼 곳에서 서울로 올라온다기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 당시에 텐트는 없고, 같이 호주에서 캠핑했던 기분을 살리고 싶어서 글램핑장에 가기로 했다. 푸른산페어웨이라는 곳은 순전히 이 친구가 골라준거라서 나는 그녀의 센스에 기쁘게 무임승차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글램핑장에서 산정호수가 코앞이었기 때문에 호수에 먼저 갔다가 글램핑장에 가기로 했다. 호숫가에 가비가배라는 뷰가 좋은 한옥 스타일 커피숍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비가배

 


그리고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날씨가 좋았다.


이 친구는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건지 날 찍는게 재밌는건지 사진을 참 많이도 찍어준다. 살면서 날 찍는데 이렇게 진심이었던 사람이 없었는데 찍어주는 사진 안의 내가 참 좋아보여서 이제는 적극 협조하는 편이다.


"언니 이쪽으로 좀 움직여봐"

"언니 모자를 좀 잡아봐"

"언니 아니 거기가 아니라 이쪽으로 가봐"

"아니 자연스럽게 해봐"


예예 그래야죠.




나도 많이 찍어주고 싶은데 매번 이런식이다.


나를 찍는 친구를 찍은 사진



글램핑장에 도착해서는 금방 해가 졌다. 바베큐를 구워먹었다. 호주에서는 우리 캠핑요리의 고수들이었는데, 왜 이렇게 진부해진걸까? 다음에 같이 가기로 한 동해안 캠핑 여행에는 좀 칼을 갈아보자.


호주 캠핑의 아침은 전날 남은 야채와 고기와 나초를 때려넣은 샌드위치였다


불닭볶음면을 머리털나고 호주에서 제일 많이 먹었다


직접 끼운 꼬치



그래도 오랜만에 밖에서 먹는 밥이라 꿀맛이었다. 바베큐인데, 맛이 없을리가.


글램핑장에서의 저녁 바베큐


첫 날 밤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간다.


글램핑장은 처음 가봤는데 히터와 침대에 올라간 전기장판 덕에 덥게 잤다. 텐트 안에 TV와 냉장고도 있어서 캠핑이라기 보다는 펜션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텐트 치기는 귀찮은데 야외에서 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고 싶을 때 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랑에르돔과 야전침대가 생겨서 앞으로 그런 날이 또 올지는 모르겠다마는...




다음날 아침


전날 배를 땅땅 두드리며 자서 '우리 아침은 안먹지 않을까'라고 했으나 밤에 화로에서 구워놓은 고구마며 라면이며 이것저것 먹으며 배를 채웠다.


이후로도 친구들과 캠핑을 몇 번 갔는데 도시에서는 '나 아침밥은 안먹어'라고 하던 사람들도 그렇게 새벽부터 밥을 잘 먹더라.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다.


오늘 어딜 가면 좋을까 검색중



차를 좀 타고 비둘기낭폭포와 흔들다리로 갔다. 네이버 블로그 후기들을 보니 별거 없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우리는 즐거웠다.


아름다웠던 비둘기낭폭포와 그녀의 등짝


분명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뻥튀기는 먹고싶단다


언니 차 샀다 널 데리러 가



멀리서 올라와 준 것만 해도 눈물나게 고마운데 선물까지 한아름 안겨주고 그녀는 내려갔다. 뭘 그렇게도 다양하게도 넣었는지 빈 손으로 나간 내가 부끄러웠다. 다음에는 30대 사회인의 재력을 보여주리라... (쥐뿔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20대 초반 친구랑 1박 2일을 몸이 부서져라 논 30대는 몸살이 났다. 아무래도 젊은 친구와 오래 우정을 유지하려면 체력을 길러놔야 할 모양. 여름에 동해안으로 일주일보다 조금 짧은 캠핑 여행을 약속했는데 그때 죽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았던 발코니


그때의 집 앞 풍경



친구님 앞으로도 친하게 지냅시다. 함께한 포천 여행은 덕분에 정말 즐거웠소. 다음 여행은 선생님의 센스에 무임승차는 그만하고 스스로의 센스도 좀 부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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