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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국내 여행

1박 2일 포천 여행

20210401-20210402 (부제: 여행의 한가운데 만난 사람)

by 윤선미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이후로는 해외 여행을 꿈도 못 꿨지만 2019년까지만 해도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배낭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아직도 내 에너지의 근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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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길을 혼자 떠나기 때문에 만나는 모든 인연에 활짝 열려있다. 주변에 오래된 인연이나,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주로 만나는 한국에서의 인간관계와 다르게 여행길에서는 누구하고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오늘 만난 언니와 다음 도시로 떠날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한 나라의 첫 도시에서 만난 인연 덕분에 한 달간의 여행 계획을 다 바꿨던 적도 있었다.


이번에 푸른산페어웨이로 글램핑을 같이 간 친구는 호주에서 만났다. 그리고 거의 세네달을 같은 집에서 살았다. 그 집에 우리 둘만 산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내내 데면데면 했기 때문에 그 때의 생활을 떠올리면 대부분 이 친구와의 추억밖에 없다. 둘 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일을 하러 온 사람이었고 다니는 직장이 같아서 매일 출근과 퇴근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놀기도 같이 놀고 아무튼 모든 생활을 다 이 친구와 했다. 노지로 캠핑도 다녔다.


IMG_6545.jpg 새벽 출근길


IMG_6546.jpg 몽롱한 상태로 보는 새벽 출근길


IMG_6556.jpg 가끔 출근길에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이 친구는 나보다 약 열 살쯤 어리다. 가끔은 왜 젊은 애들 놔두고 나이 많은 나랑 놀까 궁금했다.


"누구야. 왜 나랑 같이 놀아?"


그럼 주로 대답은 두 가지 였다.


"난 언니랑 노는거 좋은데?"

"그치? 젊은 애가 놀아주니까 신기하지?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예예 그래야죠.


LRG_DSC04667.JPG "젊은 애가 놀아주니까 신기하지?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의 화자


이 친구가 휴일을 맞아 먼 곳에서 서울로 올라온다기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 당시에 텐트는 없고, 같이 호주에서 캠핑했던 기분을 살리고 싶어서 글램핑장에 가기로 했다. 푸른산페어웨이라는 곳은 순전히 이 친구가 골라준거라서 나는 그녀의 센스에 기쁘게 무임승차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글램핑장에서 산정호수가 코앞이었기 때문에 호수에 먼저 갔다가 글램핑장에 가기로 했다. 호숫가에 가비가배라는 뷰가 좋은 한옥 스타일 커피숍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IMG_5902.jpg 가비가배



그리고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날씨가 좋았다.


이 친구는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건지 날 찍는게 재밌는건지 사진을 참 많이도 찍어준다. 살면서 날 찍는데 이렇게 진심이었던 사람이 없었는데 찍어주는 사진 안의 내가 참 좋아보여서 이제는 적극 협조하는 편이다.


"언니 이쪽으로 좀 움직여봐"

"언니 모자를 좀 잡아봐"

"언니 아니 거기가 아니라 이쪽으로 가봐"

"아니 자연스럽게 해봐"


예예 그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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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많이 찍어주고 싶은데 매번 이런식이다.


IMG_5909.jpg 나를 찍는 친구를 찍은 사진



글램핑장에 도착해서는 금방 해가 졌다. 바베큐를 구워먹었다. 호주에서는 우리 캠핑요리의 고수들이었는데, 왜 이렇게 진부해진걸까? 다음에 같이 가기로 한 동해안 캠핑 여행에는 좀 칼을 갈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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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캠핑의 아침은 전날 남은 야채와 고기와 나초를 때려넣은 샌드위치였다


IMG_6953.jpg 불닭볶음면을 머리털나고 호주에서 제일 많이 먹었다


IMG_6582.jpg 직접 끼운 꼬치



그래도 오랜만에 밖에서 먹는 밥이라 꿀맛이었다. 바베큐인데, 맛이 없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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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램핑장에서의 저녁 바베큐


첫 날 밤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간다.


글램핑장은 처음 가봤는데 히터와 침대에 올라간 전기장판 덕에 덥게 잤다. 텐트 안에 TV와 냉장고도 있어서 캠핑이라기 보다는 펜션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텐트 치기는 귀찮은데 야외에서 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고 싶을 때 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랑에르돔과 야전침대가 생겨서 앞으로 그런 날이 또 올지는 모르겠다마는...




다음날 아침


전날 배를 땅땅 두드리며 자서 '우리 아침은 안먹지 않을까'라고 했으나 밤에 화로에서 구워놓은 고구마며 라면이며 이것저것 먹으며 배를 채웠다.


이후로도 친구들과 캠핑을 몇 번 갔는데 도시에서는 '나 아침밥은 안먹어'라고 하던 사람들도 그렇게 새벽부터 밥을 잘 먹더라.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다.


IMG_6003 (1).jpg 오늘 어딜 가면 좋을까 검색중



차를 좀 타고 비둘기낭폭포와 흔들다리로 갔다. 네이버 블로그 후기들을 보니 별거 없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우리는 즐거웠다.


IMG_6004.jpg 아름다웠던 비둘기낭폭포와 그녀의 등짝


IMG_6014.JPG 분명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뻥튀기는 먹고싶단다


IMG_6034.png 언니 차 샀다 널 데리러 가



멀리서 올라와 준 것만 해도 눈물나게 고마운데 선물까지 한아름 안겨주고 그녀는 내려갔다. 뭘 그렇게도 다양하게도 넣었는지 빈 손으로 나간 내가 부끄러웠다. 다음에는 30대 사회인의 재력을 보여주리라... (쥐뿔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20대 초반 친구랑 1박 2일을 몸이 부서져라 논 30대는 몸살이 났다. 아무래도 젊은 친구와 오래 우정을 유지하려면 체력을 길러놔야 할 모양. 여름에 동해안으로 일주일보다 조금 짧은 캠핑 여행을 약속했는데 그때 죽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IMG_6655.JPG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았던 발코니


LRG_DSC04695.JPG 그때의 집 앞 풍경



친구님 앞으로도 친하게 지냅시다. 함께한 포천 여행은 덕분에 정말 즐거웠소. 다음 여행은 선생님의 센스에 무임승차는 그만하고 스스로의 센스도 좀 부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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