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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미 Jun 26. 2021

포천, 산정호수돌고래캠핑장

20210606-20210607 초여름. 화이트 와인과 책

6월 중순에 멍우리협곡캠핑장에 가기로 예약을 했었는데, 예보를 보니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올 예정이란다. 같이 가는 친구가 캠핑을 오랜만에 가는거라 '이렇게 굴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가까운 주말에 산정호수돌고래캠핑장을 방문했다. 예보 덕분에 멍우리협곡캠핑장은 예약을 한 달 미뤘는데 원래 가기로 했던 주말에도 딱히 큰 비가 오지는 않았다. 요즘 날씨예보는 정말 믿을게 못 된다.


캠핑장에 도착! 


날씨가 정말 좋았다. 요즘 햇빛이 나는 날이 드문데 이렇게 예전에 찍은 동영상을 보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친구가 찍은 동영상. 나는 옆에서 운전 중이다.


가는 길은 좀 놀라웠는데 산정 호수에 간다고 몇 번 왔다갔다 하던 길 바로 옆에 캠핑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가는 일이 엄청 익숙하더라. 


캠핑장이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와 가까워서 깊은 숲속에서 힐링을 한다던지, 새소리에 잠을 깬다던지 하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지만 접근성 하나는 최고였다. 최근에 만들어진 캠핑장이어서 그런지 화장실이며 개수대며 시설이 깔끔해서 1박 2일 간단하게 캠핑을 즐기고 오기에 좋은 곳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단위의 캠퍼들이 많았다.



사이트를 구축했다. 오늘도 역시 바랑에르돔.


겨울에만 사용하는 텐트라는 평이 많던데, 여름에도 잘 사용하고 있다. 아직 열대야가 시작되지는 않아서 그런가 밤에는 이 텐트로도 으슬으슬 춥다. 한 여름에도 사용할 수 있는 텐트를 구매해야 하나 약간 고민중인데 아직은 바랑에르돔으로도 충분하다. 만약에 사게된다면 사계절 사용할 수 있는 백패킹용 경량 텐트와 타프를 구매하고 싶다.




사이트 구축을 끝내고 앞에 개울로 내려갔다. 작은 개울물이 생각보다 꽤 차가웠다.


발이 시려워서 동동거릴 만큼의 차가움


여름 물의 빛깔과 질감



해가 떨어지기 전에 챙겨간 고기를 구워먹고, 화로에 장작을 더 넣었다. 불의 따뜻한 열기 앞에서 책을 읽었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를 듣고 연기 냄새를 맡으면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건 되도록이면 인생에서 자주 만들고 싶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 자기 책이 왜 좋은지에 대해 말하기 바빴다. 좋은 문장이 있으면 읽어주고 이게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을 수 있는지 속속들이 설명했다. 각자의 책에 진심인데다 둘이 책 취향이 달라서 서로의 말을 잘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집단 독백과 같은 대화였다고 기억한다. 하하.




나들이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말은 말술을 마실 것처럼 허세를 부려도 나이를 먹을수록 술을 점점 더 적게 마신다. 그래도 여름 캠핑에는 시원한 맥주와 화이트 와인만한 즐거움이 있나 싶다. 화이트 와인은 알새우칩과 같이 늦은 밤이 되도록 마셨는데 '역시 화이트 와인에는 해산물이지!' 라는 친구의 말처럼 조합이 좋았다.




사진첩을 아무리 뒤져도 이 날 저녁 사진은 남겨놓은게 없는 것 같다. 친구가 비건 라구 소스와 계란 면을 들고와서 파스타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라구 소스는 1인분을 넣고 파스타면은 3인분도 넘게 넣은 바람에 맹맹한 토마토 '향' 파스타가 되었다. 음식은 대충 간이 맞으면 되니까! 캠핑장 안에 있는 매점에서 스팸을 하나 사다가 구워서 반찬처럼 같이 먹었다. 밖에서 먹는 밥은 없으면 없는대로 먹어도 그럭저럭 괜찮다.


예전에는 어딜 가더라도 완벽한 경험을 하고 싶고, 완벽한 식사를 하고 싶었다. 고심해서 고른 메뉴나 식당이 맘에 들지 않으면 여행에 실패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행 전에, 여행을 하면서도 검색을 정말 많이 했다.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숙소와 맛집을 검색하다가 이미 백 번은 그 곳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아예 질려버려서 여행을 떠나고싶지 않아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렇게 애를 썼나 싶지만 정말 그때는 그랬다. 


이제는 토마토 '향' 파스타에 스팸을 버무려 먹으면서도 대충 즐겁다. 화이트 와인에 완벽한 안주가 없더라도 '역시 화이트 와인엔 해산물이지!' 하며 알새우칩을 뜯는게 웃기다. 공기가 좀 빠진 풍선같이 사람도 점차 말랑말랑 해지는 것일까?


엉뚱한 맛의 저녁을 먹다보니 해가 완전히 졌다.




아직 끝나지 않은 와인 병나발을 불며 많이 웃었다.




와인을 다 마시고는 산책을 나갔다. 캠핑장 밖으로 나가기에는 도로에 차들이 쌩쌩 달려서 캠핑장 끝에서 끝까지 여러번 걸었다. 어른들은 늦은 저녁을 즐기고 있었고 낮에 발에 모터를 달아놓은 듯 날아다니던 아이들은 아마도 잠을 자러 간 것 같았다. 캠핑장의 밤은 조용하게 들떠있다.





다음날 아침


살짝 비가 내리는가 싶었지만 소나기였다. 텐트를 걷는 날 날씨는 너무너무 중요하다. 비가 오는 와중에 철수를 하는건 철수 그 자체도 힘들지만, 나중에 텐트며 집기들을 햇빛에 말리는게 정말이지 귀찮기 때문이다.


요즘 매일 오전에 핸드드립을 내리는데 캠핑장에서도 똑같이 커피를 내린다. 집에 있는 커피 도구들을 바리바리 챙겨다녀야 하는게 약간은 귀찮지만 캠핑장에서, 또 운전을 하면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는게 큰 즐거움이라 앞으로도 두고 다닐 수는 없을 것 같다.




집에 돌아오면서 비둘기낭 폭포와, 흔들다리에 들렀다.


벌써 세 번째 가는 곳인데 특히 폭포는 갈 때마다 풍경이 바뀐다. 이번에는 진한 초록색으로 꽉 찬 폭포를 봤다. 7~8월 한 여름에는 얼마나 우거진 숲이 될지, 가을에 단풍은 어떨지, 겨울에는 눈이 쌓이고 호수가 얼어버릴지 모든 계절의 풍경을 다 보고 싶다.


그나저나 찍히는지도 모르고 찍힌 사진이 많다.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준 친구에게 고맙다.


폭포로 내려가는 길


폭포와 흔들다리 사이 산책로에 있는 전망대



친구를 댁으로 데려다주는 길. 금장 로고와 도로주행 연습을 알리는 글씨체가 멋진 블랙 소나타를 만났다. 요즘엔 이런게 멋있다. 오래된 카니발, 금장 로고가 달린 소나타, 각 그랜져, 올드 코란도, 은갈치색 벤츠.




잘못된 일기예보 때문에 칠월로 미뤄둔 캠핑이 의도치 않게 너무 바쁜 스케줄 사이에 끼어버렸다. 기대가 되면서도 제대로 쉬고 올수 있을까 동시에 두려운 마음인데, 부디 이 날의 휴식처럼 포화 속의 평화 같은 날이 되길. 그 전까지 일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이건 시시한 단상. 요즘엔 '다 괜찮다. 쉬어도 된다.'는 위로보다는 '좀 더 열심히 살아도 된다'는 말에 더 에너지를 얻는다. 대단하진 않지만 건강한 몸과 부모님의 지원 등 내가 가지고 태어난 여러 특권들을 생각하면 조금 더 열심히 살고 그로 받은 대가를 남에게 베푸는 것도 괜찮고 멋진 삶인 것 같다. 팟캐스트를 듣다가 발견한 문장인데 두고두고 힘과 지침이 된다. 역시, 일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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