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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미 Jul 23. 2021

초여름 해방촌, 양양, 강릉 여행 1

20210619-20210623 해방촌 첫 날

! 6월 중순에 다녀온 여행 기록입니다.


4월 초 포천 여행을 같이 다녀온 친구와 그때부터 계획을 한 여행이다. 달력에 일정을 등록하면서 '도대체 이 날이 오긴 오나'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만나기로 한 날이다.


원래 친구는 광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양양으로 올 계획이었는데 비행기삯을 보고는 '이럴거면 차라리 서울에 하루 일찍가서 자는게 낫겠다! 가보고 싶었던 해방촌이나 가보자'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원래는 양양 공항에서 볼 계획이었는데 용산역에서 만나게 됐다.



기차는 친구가 타고 오는데 왜 내가 다 설레는지 모른다. 기차 여행이 주는 묘한 설레임이 역사에 넘실거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친구는 KTX 타는게 처음이었단다. 맨날 버스만 타고 다니다가 기차를 타니까 얼마나 편하고 빠르고 쾌적했는지 열심히 설명해줬는데 말하는 내내 얼굴이 들떠있었다. 녀석 꽤 인상적인 경험을 했나본데.


배낭을 메고 오겠다고 했는데 짐을 싸다가 포기했단다. 결국 가져온 짐을 보니 큰 캐리어 하나, 간식 담은 가방 하나, 핸드백 하나 멀리서 보면 여행객이 아니라 보부상이었다. 이걸 배낭에 넣고 오겠다는 생각을 했다니 애저녁에 불가능한 일이었잖아. 애초에 배낭에 싸는 시도를 왜 해본거야...




친구를 차에 태워 해방촌으로 향했다. 서울에 몇 년째 사는데 남산타워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대학 다닐 때 한 번인가 남산에 가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가게 됐는지 남산타워를 본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이게 처음이 맞는 듯 하다. 아니 이게 이렇게 큰 건물이었단 말이야?


해가 진 직후였다. 바랜 듯한 파란색 하늘 아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로등이 켜져있었다. 운전을 하는데 기분이 좋았다. 오르막을 올라갈수록 묘하게 더 좋았다.




숙소에 도착했을 땐 완전한 밤이었다. 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외벽이 형편없는 낡은 건물에 있었는데 복도에서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숙소로 올라가는 중





숙소에 짐을 풀고 뒹굴거렸다.


6월 중순이었는데 꽤 더웠는지, 에어컨을 틀고 숙소가 뽀송해지니까 천국 같았다. 숙소엔 LP 플레이어가 있었다. 친구는 '언니 나 이거 하나만 보고 예약한 거잖아'라고 하더니 아주 푹 빠져서는 이것저것 틀어보고 사진찍느라 바빴다.


듣고 싶은 LP 판을 올리면 그 판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음악이 나오는 단순한 여정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평소에는 유투브에서 자주 듣던 음악, 차트에 있는 음악만 듣는데 LP 무더기를 만나면 이것저것 실험적으로 틀어보는게 되는건 무슨 마법일까?


내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떠다니고 친구는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결과물들






느즈막히 밥을 먹으러 나갔다. 근데 너무 늦게 나갔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밖에 다니질 않아서 음식점에 영업시간 제한이 있다는걸 몰랐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음식점이 많은 골목에 도착했는데 들어간 음식점마다 10시면 문을 닫아야해서 추가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서울 사람인데 그걸 몰랐냐며 조금 혼났다.


친구는 점심에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저녁 10시가 다 되도록 공복 상태였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이제는 고프지 않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언니 너무 배가 고프면 배가 안고프다? 뭔지 알지?'

'몰라... 그게 뭔데......'


광주에서 서울까지 왔는데 첫 끼니를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놓고 먹이지 못하는게 아쉬워서 이곳저곳 들어가봤지만 몇 번 더 거절을 당했다. 반쯤 포기한 상태로 테이크아웃 케밥집처럼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 저 손에 죽고싶지 않다면 아무거나 빨리 먹여야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케밥은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틀샵에 들러 와인을 세 병 구매했다.


숙소에서 먹자골목으로 나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었는데, 그말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가 고파 손을 달달 떨면서 와인  병과 테이크아웃 케밥 봉지를 들고 체감상 50 각도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정말이지  비탈길은 차를 세워놓고 불안해서 잠은   있나 싶을 정도의 경사였다. 골목의 가로등은 어둡고 양손은 달달 떨리고 습한데다 공복이고 와중에 케밥 봉지에서 고소한 튀김 냄새가 올라왔다. 이성을 잃은 내가 실실 웃기 시작하면 친구그걸 보다가 킬킬 웃었다. 또 겨우 웃음을 멈췄다 싶으면 다시 친구의 웃음보가 터지고... 급기야는 서로에게 그만 웃어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은 케밥은 정말 최고였다. 해방촌에 다시 가도 또 먹고 싶다.



케밥이랑 같이 먹고 싶어서 산 맥주를 따야하는데 따개가 없어서 또 한참 웃음 바다였다. 친구가 숟가락으로 따보겠다고 호기롭게 도전했는데 그녀도 따는 방법을 알고 말한 것은 아니었고... 우여곡절 끝에 따긴 땄는데 하도 흔들어서 하수구로 버린 맥주가 마신 맥주보다 많았던 것 같다. 아무튼 맛있었다.


사진은 좌절과 웃음 사이 어디쯤에 있는 환장의 순간을 포착한 것



보틀샵에서 사온 와인도 마셨다. 몬테스 클래식 시리즈 샤도네이를 지난 캠핑에서 맛있게 마셔서 이 친구에게도 맛을 보여주고 싶어 샀다. 가격은 만원 조금 넘었던 것 같은데 드라이하고 가벼운 맛이다. 막 열었을 때 보다는 시간이 조금 지나야 맛있으니까 너무 벌컥벌컥 들이키지 말고 천천히 마시면 좋다.





밥을 먹고 나서야 정신을 좀 차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가 요즘 하고 있는 생각,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어나고 있는 주변의 여러 상황들.



친구는 이십대 초중반인데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한 사람이다. 나는 항상 딱히 크게 이루고 싶은 것은 없고 좀 덜 실패하고, 내가 더 편한 방향으로 결정을 해왔던 사람이라서 가끔은 그런 확고한 목표가 있는 상태가 버겁지는 않을까 싶다. 나에겐 나 자신과 주변인의 행복 이외의 목표는 좀 허망하다.


이 친구를 만날 때에는 그래서 좀 조심스럽다.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고, 쉽게 포기하는 내 태도와 말들이 의도치 않았더라도 친구의 노력과 간절함을 폄하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런 캐릭터가 주변에 잘 없어서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면 일단 로또와 연금복권 그리고 퇴사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인생의 말도 안되는 랜덤성과 사회생활의 허무함에 지쳐버린 우리들...)


매번 나름 내리는 결론은 '어줍잖은 조언이나 재미없는 말을 할 생각은 버리고 재밌게 놀고 운전이나 잘하자'다. 위로가 되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경계가 아슬아슬하다면 굳이 입 밖으로 꺼낼 이유가 있나. 그걸 모르기에는 애정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쏟아내는 어른들을 너무 많이 봤다.


다음날 양양까지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밤새 떨 기세였던 수다를 잠시 미뤄두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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