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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미 Jun 03. 2021

손해보고 싶지 않아

여유를 잃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급해 있었다.


여유를 잃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 조급함에 무리한 일을 벌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예 모든 일을 놔버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짜증이 많아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이 좀 쪼잔해진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을 매우 싫어하게 된다. 아니 뭐 한 시간 두 시간 늦은 것도 아니고 약속 시간에 오 분 십 분 늦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분노에 찬다. 내가 늦는 경우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는 내로남불이 되어버린다. 또 내가 뭐라도 조금 더 하는 걸 못 견딘다. 그거 생각 한 번 더 하고, 타자 한 번 더 치고, 한 시간 더 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억울해서 '왜 남들은 안 하지!' 내적 울분을 터트린다.


얼마 전에 프로젝트에 대한 조언을 얻으러 어떤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했다. 


선생님: '파일럿 프로젝트라는 건 서로를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도 저쪽을 보면서 일을 앞으로도 같이 할 수 있는 상대인가 보는 거고 상대도 마찬가지고요.'

나: '맞네요. 한 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다음부터는 안 해도 되고'

선생님: '그래도 한 번은 더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좀 봐줄 수도 있죠. 하하 한 번만 봐주세요'


선생님은 별생각 없이 웃자고 한 말이었던 것 같지만 순간 '아, 나 지금 여유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지난 며칠 동안 '왜 남들은 안 하지!' 울분을 터트리고, '쟤는 왜 약속 시간에 늦지' 멋대로 평가하고 수많은 쪼잔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손해보고 싶지 않아, 실패하고 싶지 않아 하면서 자꾸만 좁아지기만 했던 마음이 비로소 보였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성숙해지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미숙한 마음은 없어지지 않고 상황과 시간을 비집고 다시 찾아오는 것일까. 스스로 여유를 잃은줄도 모르고 평가자 역할에 취해 단상에 올라갔다가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내려온다. 손해보고 싶지 않아!라며 억울해하는 마음이 참 못났다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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