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X 남궁인 서간에세이를 읽고
안녕하세요.
무슨 글을 써볼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라는 책이 얼마나 좋은지 홍보를 할 겸 저의 근황을 전할겸 편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우사오)>는 문학동네에서 인터넷 연재가 될 때부터 읽어 본 시리즈입니다. 굉장히 인기글이었으니 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겠죠. 이슬아와 남궁인이 주고 받은 편지 형식의 에세이이고요. 책으로 엮여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아마 이슬아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본 것 같습니다) 주문해서 이미 한 번을 다 읽고 오늘 다시 한 번 펼쳤습니다.
어제는 데잇걸즈 5기 마지막 수업을 했는데요. 앞으로 학생분들이 하시는 프로젝트에 피드백을 드리는 일정이 약간 남아있지만 어쨌든 수업으로는 한 달간의 과정에 마침표를 찍는, 그야말로 최최종_final 수업이었습니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는데 하루에 일곱시간 수업을 한다고 긴장했는지 수업이 끝나니까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아예 몸져 누워버렸어요. 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말을 하고, 또 피드백을 주는 일이란 정말 해도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고 내 몸과 자아가 산산히 흩어지는 오늘을 보냈는데요. 이런 날을 견디는데에는 역시 읽었던 책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새 책을 읽기엔 집중력이 없고, 핸드폰만 보기엔 하루가 너무 기니까요. 그래서 <우사오>를 꺼내들었어요.
저는 <우사오> 편지들 중에서 <이래저래 궁상스러운 남궁인 선생님께>라는 이슬아 작가가 남궁인 작가에게 쓴 편지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슬아 작가가 거절을 잘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강연'이라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사랑을 창작물로 옮겨 적을 때의 왜곡과 대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하는 부분을 좋아하는데요(적다보니 이 편지의 거의 모든 부분이 좋다는 말이네요).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p176 저는 거절을 잘하는 편입니다. 체력이 모자라기 때문이죠. 불러주시는 곳마다 선생님처럼 다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체력이 약한 사람은 힘을 아껴 써야 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데요. 그런 일을 할 때 너무 지쳐있지 않기 위해 일을 가려서 받습니다. 일을 받을 경우 거래처의 살림 규모에 따라 페이를 상향 조정하기도 합니다. 제게 예산을 더 넉넉히 써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는 것은 익숙한 일이에요. (중략)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아주 많은데 체력은 약해서 한 번 일할 때 최대한 많이 받아야 하거든요. 그렇게 받은 돈으로 시간을 벌고는 잘하고 싶은 일에 씁니다.
오늘도 거절 메일을 하나 보냈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강연 요청이었고요. 어떤 내용의 강연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빼곡한 가이드라인을 한참 내려도 강연에 대한 보수는 적혀있지 않은, 허무한 메일이었습니다. 그러면 기계적으로 이렇게 답장을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보수와 관련된 내용이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 윤선미 드림'
보수가 적힌 답장이 돌아왔지만 강연을 위해 사용해야하는 에너지에 비해 적은 액수의 제안이었기 때문에 결국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프리랜서를 후려치는 메일도 첫 문장은 멀쩡하다> 라는 글을 썼었는데 그 글을 읽은 지인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3. 나도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거절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일을 하면 꼭 돈만 벌 수 있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신뢰를 산다던지 하는 다른 소득이 생길수도 있는데, 적은 보수의 일이라도 노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는 말이었어요. 거기에 저는 '제 휴식에 대한 가격을 높게 매기게 되어서 인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지만 조금 더 솔직한 대답은 이슬아 작가가 한 것 같습니다. 체력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꼭 해야 할 일, 내게 더 재밌는 일들을 하기 위해 힘을 아껴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강연에 대한 이야기도 제게 너무 공감이 되는 문장 투성이였는데요.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굳지 않고 그녀만의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그 '기세'를 보며 감탄했던 저로서는 정말 의외인 글이기도 했습니다.
p177 저는 말을 못하는 편이 아니지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보따리를 자주 풀면 몸이 아픈 느낌이 듭니다. 일방적으로 혼자 떠드는 게 괴로워서 그런 것 같아요.
(중략)
몸을 사려가며 일을 받는 저도 가끔씩은 강연을 합니다. 강연을 하는 날에는 글을 못 써요.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강연에서 다 소진되기 때문이에요. 종일 말을 아꼈다가 강연장에 가서 싱싱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노력합니다.
감사하게도 대체로 강의와 강연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아마 강연 강의의 어려움, 두려움, 말을 많이 한 날 밤에 느끼는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면 제 주변 분들도 놀라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슬아 작가의 글을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던 것처럼요. 아마 그 부분에서 제가 더 큰 위로를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슬아 작가님이 하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특히 한국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출판 시장이 돈을 두둑하게 마련해서 작가님의 이야기를 청해듣는 시간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책을 사야합니다 여러분(?) <우사오>를 삽시다!
그리고 이 편지 안에는 여행기를 쓰는 저를 다독이는 문장도 있었습니다. 저는 별거 아닌 사진과 가벼운 문장들을 버무린 여행기를 브런치에 종종 쓰는데요. 같이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제가 여행과 관련된 글을 쓰는걸 응원해주고 재밌게 읽어준다는걸 알면서도 '이걸 계속 해야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는 여행기를 쓰고 읽으며 분명 행복한데요. 함께 한 여행을 제 기억에 의존해 편집하고, 어떤 순간을 평가하고, 상대를 대상화하는 일을 반복하는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가끔씩 현타처럼 찾아오더라구요.
에세이 작가인 이슬아 작가는 계속해서 현실과 닿아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숙명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장면은 쓰고, 어떤 장면은 쓰지 않을 것인지를 구분한다던지, 글 속에서의 나와 글 밖에서의 나를 분리한다던지, 작품과 실제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p182 작가의 연인에게 좋은 일이라고는 없다고 단언하셨는데요. 어떤 작가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으나 저는 작가의 연인에게 좋은 일이 아주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면서 겪은 최고의 연애는 작가와의 연애이기 때문입니다. 쌍방으로 작가의 연인이 되자 서로 엄청나게 신중해지고 정교해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기록하는 자와 기록당하는 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겪어서겠지요. 작가들끼리 사랑을 해도 서로를 오해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창작물로 옮겨적을 때 가장 나은 버전의 왜곡, 가장 나은 버전의 대상화가 무엇일지에 관해 두 사람의 지혜가 모아진다는 점에서 둘 중 한 명만 작가인 경우보다 발전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절대로 쓰지 않을지에 대한 감수성도 훨씬 예민해지고요.
이 문단 안에서도 '사랑을 창작물로 옮겨적을 때 가장 나은 버전의 왜곡, 가장 나은 버전의 대상화가 무엇일지에 관해 두 사람의 지혜가 모아진다는 점' 이라고 쓰여진 문장을 가장 좋아합니다. 실제가 창작물로 옮겨질 때 왜곡과 대상화가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으면서 이왕에 발생하는 왜곡과 대상화라면 '가장 나은 버전의 왜곡, 가장 나은 버전의 대상화'를 하기 위해 고민한다는거예요. 이슬아 작가가 쓰는 글은 에세이이고 어쩜 그렇게 솔직하게 쓰냐는 감탄을 많이 받지만, 작가 본인은 자기 글들을 소설처럼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맥락의 말을 많이 하는 것도 비슷한 얘기인 것 같아요. '가장 나은 버전의 왜곡, 가장 나은 버전의 대상화'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앞으로 여행기를 써봐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하게 되네요.
사랑스러운 신간들이 많이 나와서 행복한 요즘이에요.
정세랑 작가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이반지하 작가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이연실 편집자의 <에세이 만드는 법>,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 그리고 이슬아 남궁인 작가의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잔뜩 안아들고 안방과 거실을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읽을 책 한 권만 가지고 자리에 앉으면 되는데 저 책들을 무더기로 다 가지고 다녀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네요. 그러다보면 추리소설을 잔뜩 안고 빨빨거리며 캠퍼스를 누비던 대학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곧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이 출간된다는데 택배가 도착하는 8월 20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지의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걸까? 잘 모르겠어서 <우사오> 펼쳐들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음)
질문을 하면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평이해보이는군요. 마침 이 글을 읽을 익명의 수신자에게 아주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혹시 <우사오>를 읽으셨나요?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저는 반짝이는 것을 쫓아다니는 까마귀처럼 신간을 쫓아다니는 독자인데 이렇게 읽다가는 아주 편협한 취향을 가지게 되겠다는 불안함을 문득 느낍니다.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2021년 8월 6일
책 속의 이슬아 작가와 공통점을 발견해서 기쁜
윤선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