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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Oct 12. 2022

남산타워(3)

탈것 다 타보기


"젖소! 우유!"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에는 서울우유 광고가 붙어있다. 이걸 무의식 중에 본 사람은 많을 테지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돈가스를 먹고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올라올 땐 한가했는데 내려가려니 줄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차라리 걸어 내려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 "상윤아 걸어서 내려갈까, 케이블카 타고 내려갈까?" 물어보니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겠다고 한다. 최소 30분 이상 기다려야 될 것 같아 이 아이의 투정이 걱정이 됐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너무 잘 기다리는 거다. 자리이탈도 없이 한 번의 투정도 없이 케이블카를 탈 때까지 잘 기다려 준 상윤이가 감동이었다.


상윤이는 기다리는 동안 손가락으로 서울우유 광고를 한번 가리키며, "젖소!" 하고선, 또다시 가리키며 "우유!" 하길 반복했다. 두세 살 아기가 하는 행동이지만 9살짜리 상윤이가 해도 아직은 귀엽기만 하다. 이렇게라도 관심을 표현해주는 상윤이가 고맙다.


내려가는 케이블카는 사람을 가득 채워 답답했다. 올라갈 때는 조금만 더 천천히 올라가라 했는데, 내려올 때는 답답함에 언제 도착하나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산 둘레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올걸 그랬지. 상윤이를 내려다본다. 상윤이는 여전히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있다. 가끔 이렇게 목적을 잊을 때가 있다. 왜 내가 이 케이블카를 타고 있는지 왜 버스를 타고 여기에 와 있는지...


목적 상실은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기억상실증의 한 종류다. 아이의 양육에서 특히 그 빈도가 높게 나타나는데 발생 원인은 '욕심'이다. 욕심이 첨가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좋아해서 시작한 활동이나 놀이에 엄마의 공부 욕심 조금, 그냥 뭐든지 잘 먹기만 바라던 음식에 성장과 발달 욕심 조금 넣는 식이다. 아이의 존재 자체에도 부모의 욕심이 점점 붙기 시작하는데 가장 흔히 알고 있는 기본적 목적 상실에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있다.


이 여행은 본디 상윤이가 버스 타기를 좋아하게 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고, 목적은 상윤이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한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여행이 아닌, '목적지에 가고 오는 과정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 것이 이 여행의 기획의도다. 그러므로 상윤이의 이해가 안 가는 선택도, 불편함도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우리의 여행은 목적지 입구에서 시작하고 출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시작이 되어 다시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끝이 난다. 이 여정에서 '더 좋은 것, 더 편한 것'을 요구하는 건 목적 상실에 해당한다. 그저 뜻대로 하십시오. 저는 따를 터이니.


서울역까지 가는 길에 젖소와 우유, 빨간 우체통과 지게차를 만났지.

"버스 타고 집에 갈래? 기차 타고 집에 갈래?"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가지 선택지를 내밀어 본다. 상윤이가 버스를 선택하면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 내려가 타고 온 버스를 타면 된다. 집 앞까지 쉽게 갈 수 있다. 반면, 기차는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또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 긴 여정이다. 너의 의사를 물었지만, 속으로는 사실 '버스! 버스라고 해 제발... 너는 기차라고 하겠지만!'이라고 생각했다.


"기차 타고 집에 갈래!"


역시 상윤이는 그럴 줄 알았지. 좋아! 오랜만에 기차를 타보도록 하자.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을 빠져나오자 '오르미'라는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사방으로 창이 나 있어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사선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다. 케이블카보다 더 신기했다. 광역버스에 케이블카에 오르미. 그리고 기차에 지하철에 다시 시내버스까지. 그래, 이번 여행의 주제는 '탈것 다 타보기!'로 하자.


원래는 케이블카에서 내려 명동역으로 걸어내려가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갈 예정이었는데, 오르미라는 변수를 만나 내리고 보니 방향 감각이 없어졌다. 여기가 어딘지 당최 감이 안 잡히는 상황. 길 찾기 어플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의 고마운 여행 동반자. 서울역까지 찾아보니 도보로 갈 수 있을 만한 거리다. 걷기로 했다. 오르락내리락 서울길은 신도시의 길과는 사뭇 다르다. 건물들도 질서가 없다. 인도와 차도도 불분명하다. 원래 나는 모르는 길, 질서 없는 거리, 불편한 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들뜬다. 절로 콧노래도 나온다. 왜인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서울역까지 가는 길에 서울우유 광고며 대리점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상윤이는 걸으며 "젖소 어딨어?" 혹은 "우유 어딨어?"라고 묻고는 내가 그 질문을 따라 말하면 "여깄네!"라고 대답하는 놀이를 몇 번이나 하며 신이 났다. "빨간 우체통!" 서울의 작은 우체국도 보았고, "지게차!" 공사 중인 땅에 세워진 지게차도 보았다.


그렇게 골목골목 하나씩 발견한 것을 읊어대며 서울역까지 20분 거리를 걸었다. 회현역을 지나갈 때부터는 서울역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퍼져오고 매캐한 버스 매연들이 무더운 날씨에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 조차도 경험이다. 이 지독한 냄새랑 눈, 코 매운 매연, 혼잡하고 정신없는 곳 이곳이 바로 서울역이란다.


 '수원 가는 기차는 많을 거야.' 생각하며 예매했지만 주말이라 매진이 많아 탑승시간까지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표를 바꿔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서울역 롯데마트나 가자.' 싶었다. 상윤이가 그렇게 외쳐대는 말, "버스 타고 마트가!"를 내가 이루어 주도록 하지. 바로 여기, 서울역에서.


롯데마트에 가서 장난감 코너에 들러 작은 장난감을 골랐다. 여행을 가면 원래 기념품 하나씩을 사서 돌아가는 법. 상윤이는 몇 개째 사는 건지 모르겠는 '꼬마버스 타요'에 나오는 '소방차 프랭크'를 골랐다. 예전엔 똑같은걸 사는 게 용납이 안돼서 다른 걸 고르게 했는데, 그러면 사놓고 아예 건들지를 않아 더 아깝다는 걸 깨달았다. 비록 매번 똑같은 걸 사도 상윤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걸 사는 게 돈이 덜 아깝다는 판단. '안' 아깝다는 게 아니고 '덜' 아깝다는 것.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 그거 사!"


소방차 프랭크와 미끌이 두 개, 랜덤으로 나오는 포켓몬 팽이가 든 캡슐을 하나 사고서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무궁화호는 서울역 승차장에 도착해 있었고, 우린 바로 승차할 수 있었다. 무궁화호는 서울역 같다. KTX와 무궁화호 어느 쪽이 쾌적한가는 당연히 KTX 쪽이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할 때는 무궁화호가 훨씬 마음이 편했다. 적당한 기차 안 소음과 왔다 갔다 이동하는 사람들로 인해 아이의 소리도 움직임도 티가 나지 않는다. 느려서 그렇지.


서울역은 사랑을 싣고. 엄마와 아빠의 로맨스가 시작되었던 곳. 지금은 비록 너랑 미끌이 들고 무궁화호를 타지만 예전엔 엄마도 엄마 인생의 멜로 주인공이었다는 거 알고 있니? 코끝과 손끝이 시린 공기에 빨개진 채 오송행 마지막 열차에 오르려던 엄마를 멈춰 세웠던 그날의 설렘을 너는 아냐고... 모르면 뭐 어쩔건데. 아니 그냥 그렇다고.


미끌이 하나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무궁화호

무궁화호를 타서 창 밖 한번 쳐다보고 미끌이 한번 쥐어 떨어뜨리고 줍고를 하다 보니 어느새 수원역에 도착했다. 이 아이의 행복은 천 원이면 채워진다. 싸고 쉽다. 그런데 나는 늘 멀리서 이 아이의 행복을 찾느라 지친다. 보이지 않는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여기서 행복한 이 순간은 외면하거나 금세 잊어버린다. 이 아이를 지금 행복하게 해 주는 세 가지. 미끌이, 무궁화호, 엄마. 


너와의 시간을 보내고 너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것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최면에 걸린 것처럼 또 이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비법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니깐 자꾸 나와야 한다. 너와 현관문을 열고 나와 버스를 타야 한다. 자꾸자꾸 들여다보아야 한다. 상윤이가 무엇이든 반복해서 배워야 잊어버리지 않듯, 나 또한 너와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머리에 반복해서 새겨 넣어야 한다.


우리는 수원역에 무사히 내렸다. 지난번 한번 와봤던 곳이기에 낯설지 않게 지하철까지 제대로 탔다. 만석이었던 지하철에 "오늘은 자리가 없네. 서서 가자." 내뱉었던 소리가 신경이 쓰였던 걸까. 아니다. 그냥 마음이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청년이었던 거다. 마음만큼 -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 외모도 훤칠한 내 기준 젊은이에게 상윤이는 자리를 양보받았다. 덕분에 부엉이 가방 손잡이를 꽉 쥔 채 편하게 앉아왔다.


문제는 오히려 전철에서 내려서였다. 여기서 타는 건지, 길을 건너서 타는 건지 헷갈려 길을 세 번 건넜다. 이 즈음되니 상윤인 엄마를 못 믿고 있는 것 같다. 긴장도 되고 짜증도 난 것 같다. '아 그럼 네가 찾든지!' 상우였음 한마디 했을 거다. 상윤이니깐 묵묵히 무시로 짜증을 방어한다. 버스가 왔고 지도 앱이 시키는 대로 버스를 탔는데 처음 타보는 노선에 나도 긴장, 상윤이도 긴장. 둘 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는 동공은 매우 흔들리고 엉덩이는 의자에 40% 정도 붙은 채로 어쩔 줄 몰라했다. 아는 동네가 나오면서부터 표정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너나 나나. 우리 동네의 랜드마크가 나오자 갑자기 들썩거리며 박수를 치는 상윤이다. 워 워 진정해.


"쉿! 상윤이 조용!"

했지만 상윤이의 행동이 귀여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다 크흡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드디어 무사히 도착했다. 탈 때는 아파트 앞에서 타지만 내릴 때는 아파트 맞은편에서 내리기에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상윤이는 벌써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초록불이 켜지고 상윤이는 달린다. 뒤에서 나는 소리친다.


"김상윤 뛰지 마! 천천히 걸어 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집까지 뛰어 들어가는 상윤이의 뒷모습에서 반가움이 느껴진다. 소자 돌아왔습니다, 아버님.





이 이야기는 마치 며칠 집 나갔다 돌아온 것 같은 이야기지만,

알고 보면 집 나간 지 겨우 6시간짜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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