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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Oct 14. 2022

보육 수첩

목장갑을 찾겠다고 베란다장을 열었다.

툭!

책 한 권이 떨어졌다.

'(만 0세) 보육 수첩 방긋반 김상우'


선생님과 '상우'라는 공통 대상으로 교환일기를 쓰듯 써 내려간 보육 수첩은

돌쟁이 김상우가 곰, 공, 귤, 물 등 한 음절로 이야기하다가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발달 과정이 적혀있었다.


추억이 몽글몽글.

'우리 상우는 아기 때 진짜 귀여웠지.'

생각하다가,


'여기 상윤이 수첩도 있을 텐데...'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한 권, 두 권, 세 권...

일곱 권이나 나왔다.


첫 페이지를 펼쳐야 하는데

침이 꼴깍.

심장이 아린다.

어떤 맘이었는지 생각나니 덜컥 겁이 난다.


원래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일이 더 많으니깐

그래. 일단 보자.


2016년 3월 7일,

상윤이 만 15개월

보육 수첩이 시작됐다.

벌써 두 번째 어린이집.

어린이집 적응기간은 2주였지만,

출근 때문에 일주일 적응기간을 가지고 종일반을 시작했다.


2016년 3월 15일 화요일.

부모님께.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옷을 끌어안고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답니다.'


벌써 눈물 버튼이 켜졌다.

아직 3장밖에 안 읽었는데...


상윤이의 애착 물건은 상윤이 만삭 때부터 입어온  모달 내복이었다.

세탁하기 전 엄마의 냄새가 밴 부드러운 모달 내복.

어린이집에서 애착 물건을 보내주면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길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보냈었다.

9살인 지금도 잠이 올 때면 엄마한테 찰싹 붙어서 자는 상윤이 인데,

15개월 상윤이는 얼마나 엄마가 많이 그립고 생각이 났을까...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선생님께.

'점차 눈을 맞추며 웃는 횟수도 늘어나고...

그동안 저와 상윤이의 상호작용이 많이 부족했구나 반성하게 되었답니다.'


부모님께.

'오늘은 바깥놀이 시 상윤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기분 좋은 소리도 지르고 옹알이도 많이 했답니다.

평소보다 아이컨텍도 많이 해주었어요.'


탁.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서.


나는 이때부터 낌새를 채고 있었다.

상윤이가 눈을 맞추지 않는 것.

표정이 없는 것.

상호작용이 줄어든 것.


내가 자꾸 눈물이 나는 건

그때 아이에게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었던 아이의 퇴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그때만 생각하면...


모든 걸 혼자 껴안고

내 탓이라 여기며

도와주는 이 없이 홀로 아등바등거리던 나를,


'괜찮을 거야.' 위로해 주는 사람은 있었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없어

갈피 못 잡고 있던 나를,


낮에는 아이 앞에서 괜찮은 척 웃다가

밤마다 어둠 속에서 혼자 눈물 흘리고 있던 나를 생각만 하면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외로워 보여

눈물이 나는 것이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지금도 충분하다고,

잘 해왔고 잘하고 있다고...


칠흑같이 깜깜한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그때의 나를 일으켜

안아주고,

토닥토닥 등을 어루만지고,

눈물 닦으라고 티슈를 건네주고 싶은 그런 마음인 거다.


지금의 나는 꽤 많이 괜찮아졌지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괜찮지가 않다.

2016년에 두고 온 나는 여전히 계속 슬픔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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