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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Sep 10. 2023

교장이어서 좋은 점이 뭡니까?

교장의 책임감

"교장선생님, 교장이 되니 좋은 점이 뭔지 궁금합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앉은 젊은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글쎄요. 교장 된 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교장을 몇 년 했다면 질문에 금방 답을 했을지 몰라도 초짜 교장 입장에서는 아직 좋은 점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선생님은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장 하면 앉아서 결재와 결정만 하는 사람과 가끔 잡초나 뽑고 나무를 손질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왜 교장이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직 좋은 점을 찾지 못했을까?)

고작 일주일 교장 직을 수행한 내가 느낀 바는 이것이다.  



책임감



상상만 했던 교장의 책임감은 가히 측정 불가능한 무게라고 생각된다.

책임감은 타자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그래서 오직 생존의 욕구만 있는 유아에게는 책임감이 없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부모형제라는 타자를 인식하면서 책임감이 싹 띄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순히 내 주변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책임이 생기지 않는다. 타자의 존재가 나에게 선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비로소 책임감이 생긴다. (모든 성인이 책임감이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높은 수준의 책임감은 불교의 연기(緣起)를 깨달을 때다. 왜냐하면 사람만을 타자라고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타자라고 인식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그것이 멸한다.”


아무튼,

교장이 되는 순간 학교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원은 나와 관련 있는 타자들이며 서로가 서로에게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무한 책임감이 생긴다. 왜냐하면 최종 결정권자는 교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교장도 마찬가지다.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교장이 아니라 소통과 공감으로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교장도 결국 그 문화를 만든 책임은 져야 한다.   



불안감


다음은 불안감이다.

불안감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깨닫는 순간 발생하는 감정이다. 즉 알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이 불안감은 책임감이 크면 클수록 나타나는 두려움이다. 교장으로서의 나는, 수많은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과 행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미래의 불안감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혼자 있는 교장실에서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다.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변명(?)을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실천에 옮길 때는 '진정 그것이 학생을 위하는 것은지?'와 '자칫 교직원의 맹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지?'를 잊지 말아야 함도 잘 알고 있다.  

  






교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감과 교장이니까 가져야 할 불안감은 아마도 이 직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함께 할 것이다. 다만 상상하건대, 교장의 경력이 쌓일수록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감정이 되지 아닐까? 이런 시기가 올 때 비로소 내 삶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길 것이고, 점심시간 내게 물었던 젊은 교사의 질문에 온전히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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