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os Apr 12. 2024

MZ 교장의 학생 민원 전달법

상처주지 않고 하고 싶은 말 전달하기

얼마 전에 한 아이가 슬픈 얼굴을 하며 교장실로 찾아왔습니다. (작년 9월에 교장이 된 이후 학생들에게 고민이나 상담거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더니 요즘 자주 찾아온답니다.) 왜 이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냐고 물었더니, 어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한 말로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더 자세히 들어보니, "고등학생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니 한 눈 팔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미로 선생님이 말을 해주셨는데 내용 중에 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아마 좋은 의도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거라고 위로하고 교실로 보냈습니다. 한 반에 30명이 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교사의 언어는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자칫 가시 돋친 말이 되어 지금처럼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선생님에게 이 상황을 전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해당 선생님을 불러 상처받은 학생의 말을 전하면 당연히 선생님도 많이 속상할 것입니다. 자칫 선생님 가르침의 열정을 꺾을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고심 끝에 저는 전체 선생님께 편지를 띄웠습니다. 해당 선생님은 글을 읽고 본인의 말을 되새길 수 있고, 다른 선생님도 아이의 입장에서 다시금 생각해서 말을 할 수 있을거라 믿었습니다.






먼지라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꼬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히 앉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제가 어찌나 예뻐하는지 딸과 아내가 샘을 내기도 합니다. 딸이 고양이만 키울 수 있게 해 주면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를 가겠다는 말에 속아 지금의 먼지를 데려왔습니다. 물론 딸은 고양이를 돌보지 않는 답니다.      


우연히 애묘 카페에서 의정부에 사는 어떤 사람이 러시안블루 새끼를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갓난아기 얼굴처럼 생긴 귀여운 새끼 고양이들이 다섯 마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너무 예뻐서 소리를 지르며 안으려고 하자, 놀란 고양이들은 잽싸게 구석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지금 키우고 있는 먼지라는 고양이를 빼고요. 이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고양이의 간택인가 싶어 집으로 데려왔답니다.      

  

지난주에 어떤 학생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딱 봐도 슬퍼 보이는 눈빛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어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본인이 상처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본인이 말을 하면 그 선생님이 곤란해질 수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비타500을 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주고 교실로 보냈습니다.


비유가 적절한 모르겠습니다만, 처음 우리 집 고양이를 만났을 때 저는 너무 반갑고 귀여워서 소리를 내고 팔을 크게 벌려 안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저에 이런 행동에 우리집 먼지를 제외하고 모두 놀라 줄행랑을 쳤지만요.

교실에 있는 23명의 학생들이 이와 같을 거라 생각됩니다.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해주는 좋은 말들을 대부분 아이들은 그 말의 맥락을 이해하여 좋게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아이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으니까요.      

송구한 말씀이지만, 해주시는 좋은 말들이 행여나 어떤 아이가 오해하여 받아들이지는 않나?, 혹여 상처받은 아이가 있지 않을까? 살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 또한 제 말과 행동으로 자칫 존경하는 우리 선생님들이 오해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항상 살피겠습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교장실 앞에 000 선생님이 지난해에 심어놓은 예쁜 튤립이 활짝 피었답니다. 식사 후에 곧바로 들어가지 마시고 구경하고 가시면 여우 같은 우리 학생들에게 받은 상처를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갈 수 있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만간에 양비귀꽃도 활짝 필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냥 잡초나 민들레처럼 생겼지만 기다리면 좋은 소식 있을 거라 000 선생님이 알려주셨답니다.     

여전히 학교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바로 처리하고 싶은데 이게 제 맘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잊지 않고 그 방법을 찾고 있으니 양귀비꽃 활짝 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믿고 기다리시면 선생님이 근무하시기에 편안한 학교로 만들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실제 선생님들께 보낸 편지


이전 01화 교장이어서 좋은 점이 뭡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