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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Sep 20. 2023

진짜 교장실에 들어가도 괜찮아요?

교장실은 열린공간이어야 한다. 권위는 갖되 권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교장선생님 진짜 들어가도 괜찮아요?




"똑똑똑~"

"누구십니까?"

점심식사 후 양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교장선생님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양치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문을 열었더니 남학생 4명과 여학생 2명이 배시시 웃으면서 문 앞에 서 있었다. 딱 봐도 얼굴에 '우리는 신입생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당연하지. 얼른 들어와"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빨리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 교감이었다. 교감은 생각보다 외로운 자리이다. 물리적으로는 교무실 구석에 내 키보다 더 높은 파티션으로 교사와의 경계선이 지어져 있는 자리에 앉아 있고, 심리적으로는 교사와 교장의 중간자로서 교사에게도 끼지 못 하고 그렇다고 최종 결정권자인 교장도 아닌 서글픈(?) 직이다.

그런데 교장이 되고 보니 교감이 느끼는 외로움은 두 살 베기 아기가 보채는 엄살 수준이었다. 더 이상 학생과 가까워질 수 없는 위치임을 자각하는 순간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이 다가왔다. 그나마 교감은 학생에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지만, 교장은 학생마저도 어려워하는 그래서 함께할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제 발로 찾아와 교장실에 기꺼이 들어가고 싶다고 하니 너무 기뻤다.


"근데 교장선생님, 진짜 들어가도 괜찮아요?"

학생들은 막상 들어가려고 하니 어색하고 떨렸는지 들어가도 되는지를 재차 확인한 후 들어왔다.






지난주에 학생자치회 임원들과의 첫 간담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공모교장 선발 과정 중 학교경영 발표회 자리에 있었던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공모교장 심사 발표회 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학생회 간부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면서 불러 주었다. 미리 유튜브에서 학생회 선거 영상을 찾아 이름과 얼굴을 외우고 있었다. 교장이 된 후 안 사실이지만 이때 내가 학생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해 주는 모습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미리 준비해 둔 햄버거와 음료를 함께 먹으면서 편안하게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때 학생 한 명이 교장 선생님과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everyday everytime'이라고 말해주었다. 기꺼이 교장실은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든 찾아와도 된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때 말한 것이 학생들에게 소문이 나서 오늘 학생들이 찾아온 것 같았다.






교장실은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 학부모 모두에게 교장실은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교장이 아무리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고 말해도 그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낯섦에 쉽게 갈 수 없는 공간이 교장실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찾아와도 좋다'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단 혹시나 몸에 배어 있는 교장의 권위의식은 버리고.,


'권위가 있는'과 '권위적인'은 다르다.

권위는 타인이 나를 따르게 하는 힘이다. 이 힘은 내가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인정해 줄 때 진정성이 발휘된다. 권위의식에 사로 잡힌 사람 주변에는 형식적인 만남만 존재할 뿐 진실된 만남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교장은 권위는 필요하지만 권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내가 먼저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 저절로 권위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다음 필요한 것은 교장실에 찾아왔을 때 진실된 마음으로 사람답게 대우해야 한다. 말로만 언제든 찾아오라고 한 사람은 이때 모든 것이 탄로 난다. 잔뜩 긴장한 채로 들어온 사람에게 형식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두 번 다시 교장실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금방 소문이 퍼져 신뢰를 잃게 된다. 이후부터 교장은 외딴섬처럼 쓸쓸하게 지내야 한다. 마지 못해 교장실에 들어온 사람은 일분일초라도 빨리 빠져나가기만을 기대릴 뿐이다.




학부모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학생과 선생님보다 교장실에 찾아가기 더 쉽지 않은 대상이 학부모다. 자녀 관련 민원이 있을 때나 씩씩거리며 교장실에 찾아올지 몰라도 다른 이유로 교장을 찾아오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오늘 마침 학교운영위원회가 있었다.

일부러 오전에 학교운영위원회를 개최한 후 점심 급식을 함께 먹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떤 급식을 먹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한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급식을 함께 먹자고 하니 너무나 좋아했다.

이렇게 학부모를 온전히 교육가족으로 대우를 하면 학교(교사)에 대한 불신이나 불만족은 많이 사라진다. 학부모는 학교를 믿고 기다려주며, 더 나아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 편이 되어주기도 한다.




"우와! 교장실은 이렇게 생겼구나! 엄청 넓네요. 교장선생님 심심하시겠어요?"

교장실이 신기했는지 학생들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생각보다 크지? 이 큰 실에 혼자 있으니 외롭게 쓸쓸하단다. 그러니까 자주 놀러 오렴. 그렇다고 막 소문은 내지 말고. 하하하"

행여나 몇 백명의 학생들이 찾아올까 봐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말했다.


"이제 곧 수업 시작이에요. 저희 가볼게요.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학생들은 내가 내어준 비타 500을 다 마시고 수업이라고 쏜살같이 나갔다.


활기찬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어서인지 숨이 죽어 고개를 숙이던 난초들이, 긴 가뭄 끝에 내리는 가을비를  맞은 것처럼 다시 머리를 들고 살랑거리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 가는 수학여행, 학생들은 날아갈 듯 행복합니다.



#교장#학교#교사#교감#학생#교장실#관계#만남#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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