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유증
"얘야! 밥 먹을 때라도 마스크를 벗고 편하게 먹지, 그렇게 불편하게 내렸다 썼다 하면서 점심을 먹고 있니?"
"교감선생님 학생 1명이 수업 중에 쓰러졌습니다. 급히 119에 신고했고 지금 보건선생님이 학생과 같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체육시간과 점심시간입니다.
아마도 체육시간은 공부를 못(안) 하는 학생들도 평등하게 대우받으면서 마음껏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점심시간도 좋아합니다. 사실 저는 중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이 싫었습니다. 일찍 도시로 유학 온 나는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가져온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싸준 도시락도 맛있었지만 사춘기 시절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싸준 도시락을 책상 속에서 꺼내기가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같은 반찬과 밥을 먹습니다. 창피해서 도시락 반찬을 꺼내기 싫은 학생들은 없으며 같은 급식을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불행하게도 불청객처럼 찾아온 코로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급식시간의 즐거움을 빼앗아갔습니다.
방역을 위해 친구들 사이에는 칸막이가 놓여 있어 식사 중에는 절대 대화를 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학생은 마스크 벗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밥을 먹을 때만 잠깐 마스크를 내렸다 바로 쓰는 진기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불편하더라도 식사를 그렇게 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현실에 적응하여 밥을 먹을 때 조차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학교에서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아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학생도 생겼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등의 갈등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정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제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의 공통된 상황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왜 유독 중1 학생들에게 갈등이 많이 일어날까?'에 대해 몇몇 선생님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코로나가 발생한 시기가 지금 중1 학생이 초등학교 5학년 때임을 주목하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은 한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기본적인 대화나 관계의 기술을 배우고 익혀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체험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코로나 마스크를 쓰게 됨에 따라 사람 간 관계의 기술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공통된 생각을 하였습니다.
관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입니다.
진정한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입 모양과 표정을 함께 보아야만 이루어집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표정으로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의 대화는 말소리만 들릴 뿐 그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듣는 사람은 소리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인식하며 관계를 정리해버립니다. 표정이 없는 이런 대화는 자칫 자기중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지금의 중1 학생들에게 관계로 인한 갈등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코로나를 극복한 이후에도 많은 학생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고 생활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학교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력 향상이 아닙니다. 3년 동안 마스크 쓴 내 모습을 진짜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나를 온전히 드러낸 자기 모습이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자기정체성 찾기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초중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입니다.
사진출처 :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36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