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은 민원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네가 기찬이구나! 아빠를 많이 닮았네"
담임 선생님에게 기찬이를 교장실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네"
학생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이거 선물이야!"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쓰인 수능 샤프와 초콜릿을 건네주었습니다.
"앗 네 감사합니다."
기찬이는 잘못한 게 있어서 교장실로 불러온 줄 알고 잔뜩 긴장했는데 수능 샤프를 주니까 금방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기찬이 학교생활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주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기찬이는 수능 샤프가 신기했는지 만지작거리면서 교장실을 나갔습니다.
1학년인 기찬이는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위원의 자녀입니다. 자칫 교장이 특정 학생을 편애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1년 동안 학교를 위해 봉사해 주신 학부모를 위해 도의적으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교육과정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식적, 비공적으로 학부모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학부모 참여가 필수적인 학교의 위원회는 학교운영위원회를 비롯하여 학칙제개정위원회, 학교도서관 운영위원회, 학교자체평가위원회, 학교폭력전담기구위원, 생명존중위원회, 체험학습활성화위원회, 교복공동구매위원회, 급식모니터링위원 등. 이 많은 위원회의 학부모를 위원으로 위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몇몇 학부모들이 중복으로 여러 위원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 전반과 예산 등의 심의 의결하는 매우 중요한 법적 기구입니다. 그래서 학운위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이상 개최됩니다. 고등학교는 두 번 열릴 때도 많습니다. 학교를 위해 학부모가 봉사활동을 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대부분 학부모는 학교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면 본인 자녀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선한 의도로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위원을 맡아주십니다. 실제 학부모 위원이 학교에 와서 자녀 관련 개별 부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장에 입장에서는 더욱 고맙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해주시니까요.
그래서 저는 1년에 딱 한 번 수능시험이 끝나면 남아 있는 수능 샤프를 준비했다가 해당 자녀에게 건네줍니다. 작은 수능 샤프이지만 1년 동안 학교를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저 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매우 좋아해서 이 보잘것없는 이벤트는 의외로 효과가 좋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리면 저만의 방식으로 학부모와 소통을 합니다.
점심시간을 고려하여 학운위를 오전에 개최합니다. 학운위가 끝나면 학생들이 밥을 먹는 급식실에 가서 함께 급식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학교장 업무추진비로 급식비를 결재합니다. 자녀들이 먹는 똑같은 음식으로 점심을 대접하니 학부모들도 좋아합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 것보다 만족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교장실에 가서 제가 직접 타주는 커피를 마십니다. 비록 캡슐 커피이지만 시간도 절약되고 맛도 일품입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학교운영위원회 때 못다 한 학교 교육과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학부모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저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주로 듣고만 있습니다. 요즘 우리 학교와 학생에 대한 학부모의 생각은 어떤지? 학교 운영에 대한 건의사항은 무엇인지? 학교장 학교 경영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지? 등. 첫 커피 타임 때는 상황 파악을 하느라 의견이 많이 없었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학부모와 소통의 시간을 갖다 보니 이제는 거리낌 없이 학부모의 생각을 말합니다.
당연히 저는 많이 힘듭니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신경쓰임이 필요하니까요. 학부모들은 칭찬도 해주지만 불만사항도 많습니다. 저는 주로 경청을 하되 학교 경영 또는 교사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을 땐 주저하지 않고 오해를 풀기 위해 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끝날 무렵에는 학교와 선생님을 믿어달라고 요청합니다. 학교와 선생님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절대 자녀 앞에서는 흉을 보면 안 된다고도 말합니다. 불만이 있으면 이런 시간 또는 언제든 교장에게 직접 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선생님은 학부모가 학교에 방문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학부모가 감시한다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교장이 직접 이런 식으로 학부모와 소통하여 학교와 선생님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시키면 학교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학부모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학교 밖에서 학교에 불만을 표출하는 학부모에게 학교의 입장에서 설득도 해줍니다. 저는 이론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또한 웬만한 민원은 교장이 직접 해결합니다. 처음부터 교장이 나서지 않아야 하는 민원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1차로 해당 선생님과 소통했음에도 민원이 해결되지 않으면 곧바로 교장이 나서서 학부모와 소통을 합니다.
교장이 직접 나서서 민원을 처리하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학교장까지 학부모 민원이 올라왔다는 것은 학부모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럴 때 학교장이 정확한 지침과 근거를 제시하여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를 친절히 설명하면 대부분 학부모는 수긍을 합니다. 최종 결정권자인 학교장의 발언에는 그만큼 책임과 무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학부모의 민원이 복잡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의 불만사항이나 어떤 교사에 대한 특별한 요구 등입니다. 이럴 경우 학교장도 곤욕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교장이 전면에 나서 학부모를 응대하면 선생님은 우리 학생들을 위해 수업과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어 좋습니다.
학교장의 민원처리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학부모가 제기한 민원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직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용을 파악해야 합니다.
둘째, 학교와 선생님의 의견과 입장뿐만 아니라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의 입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내가 만약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학부모의 불만사항이 충분히 이해할만한 지점은 없는지를 파악해야 해야 합니다.
셋째, 민원과 관련된 법령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법제처(https://www.moleg.go.kr/) 홈페이지, 교육청 지침과 규정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그래서 법적 근거를 토대로 선생님을 이해시키거나 학부모에게 관련 법령을 알기 쉽게 안내하여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넷째, 민원 해결을 위해 필요한 증빙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아동학대나 교권침해는 증빙자료가 중요합니다. 교사는 교과지도와 생활지도의 전문가이지만 고소와 고발 건에 대한 대응 방법이 서툽니다. 교장은 이런 심각한 사안에 대해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해당 선생님을 지원해야 합니다.
학교에 대한 민원의 심각성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학교와 교사들은 고통받아 왔습니다. 학교장도 민원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생을 위해서 이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학교장의 책무라고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