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술쟁이도 등산하게 한다.
등산은 싫어한다. 하지만 하필 론다에서 할 일이 딱히 없었다.
아침에 일찍 깬 김에 렌터카를 몰고 누에보 다리 아래쪽으로 향했다. 블로그에서 본 위치였는데, 차로 접근하기도 쉽고 유명 연예인이 그 풀밭에 앉아 다리를 찍은 사진도 있었다. 풀밭을 따라 오르다 한국인 커플을 만났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인사를 나눴다. 소매치기 걱정에 여행 내내 놓지 않던 핸드폰을 처음 내려놓았는데, 그들이 정말 멋진 사진을 남겨줬다. 역시 한국인이다.
다리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이 정도면 충분히 봤다’ 싶었다. 그런데 짝꿍은 더 가까이 가보고 싶다고 했다. 절벽 위에서 나를 찍어준 사진을 보니, 웅장한 스케일이 새삼 실감 났다.
다음 날 산책 중에 진짜 등산로를 발견했다. 전날 우리가 갔던 길은 그저 비탈진 오솔길이었던 것 같다. 이번엔 나도 제대로 된 길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곧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걸 꼭 올라가 봐야 하나? 얌전히 발코니에서 와인이나 마실 걸 싶었다. 그때 땀범벅이 된 여행자가 내려오며 외쳤다.
“Worth it! Go ahead!”
머뭇거리던 마음을 들킨 듯해 머쓱했지만, 나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걸었다.
야속하게도 길은 점점 좁아졌다. 조금만 실수하면 절벽이 나를 잡아당길 것만 같았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길 이 있는 거 맞아?” 하고 묻자, 앞서가던 짝꿍이 “아니”라고 답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뒤돌아 내려왔다. 짝꿍 말로는 내가 꽤 빨랐다고 한다.
조금 덜 가파른 곳에 이르러 다시 다리를 올려다봤다. 가까이서 보니 위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전혀 다른 웅장함이었다. 애플 워치 화면에는 심박수가 연신 깜빡이고 있었다. 163bpm이라니. 그러나 숨을 돌리고, 침착하게 인증샷도 남겼다. 역시 한국인이다.
아마 스페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풍경을 보려고 이렇게까지 오르진 않았겠지. 누에보 다리와 짝꿍, 그리고 ‘Worth it’ 여행자 덕분에 나는 조금은 다른 나를 만났다. 싫어하는 일정은 여행 계획에 넣지 않는 나지만, 이런 우연한 계기로 싫어하는 것을 긍정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여행의 가르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