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도 삽니다, 기념품
여행 기념품은 사지 않는 편이다. 용도가 “기념품”인 물건들은 만듦새가 좋지 못할 때가 많다. 특정 관광지를 표현하기 위한 목적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예전에는 그 나라에서만 구할 수 있는 상품들이 기념품으로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상품을 비슷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이자 미니멀리스트로 집에 물건을 늘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되도록 기념품 대신 기록으로 여행을 남긴다. 물론 술은 예외다. 마시는 순간을 남기고 내 집에서 떠나가니까.
스페인 여행에서도 기념품은 술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사게 된 토마토 접시는 다르다. 기념품을 사지 않는다더니 모순이 아닌가? 이 토마토 접시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이 접시는 우연히 말라가의 한 플리마켓에서 만나게 되었다. 바닥에 강판처럼 오돌토돌한 돌기가 있는 토마토를 갈아먹을 수 있는 전통 접시이다. 접시를 판매하던 분이 내 눈앞에서 토마토를 순식간에 갈아내 보였다. 수작업으로 접시 무늬를 그려 넣는다고 했는데, 접시마다 개성 있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은근한 상아색에 테두리와 강판 부분은 초록색, 고사리 같은 빨간 무늬가 그려져 있는 접시가 특히 내 마음을 움직였다. 토마토 색 접시에 토마토를 갈아먹는다니!
나는 원래 갈아먹는 토마토를 좋아한다. 신기하게도 토마토 과육을 베어 먹는 것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햄버거에서도 토마토를 뺄 수 있는 옵션이 있다면 언제나 빼는 사람이다. 토마토의 단단하지도 물컹하지도 않은 식감이 개인적으로 별로다. 갈아먹는 토마토는 다르다. 애매한 식감은 사라지고 시원한 맛만 남는다. 스페인에 와서 토마토와 추억이 많았다. 어느 호텔 조식이든 꼭 만날 수 있었던 토마토퓌레. 바게트에 올리브 오일 한 바퀴, 소금 한 꼬집 올려 토마토퓌레를 얹어 먹었다. 츄러스 집에서도 토마토와 바게트를 만날 수 있었다. 가게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가르파쵸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 접시는 행여나 깨질까, 옷 사이에 돌돌 말아 소중히 가져왔다. 짐을 풀고, 일상 속에 여행을 잊어갈 때쯤 이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주말에는 꼭 이 토마토 접시를 사용해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작은 토마토를 한 팩 샀다. 토마토를 얹어 먹을 냉동 바게트 생지도 샀다. 말라가의 토마토 접시에 토마토를 박박 갈았다. 바게트에 마늘을 갈고, 론다의 올리브 농장에서 산 올리브 오일을 휘휘 둘렀다. 소금을 한 꼬집 뿌리니 스페인에서 맛봤던 토마토의 순간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주말 이틀 동안 토마토를 여섯 알 먹었다. 마음에 쏙 드는 기념품이다. 여행지마다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